한줄 詩

당신의 일기예보 - 현택훈

마루안 2018. 3. 14. 23:58



당신의 일기예보 - 현택훈



당신이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것은
이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설운 편지체의 바람을 읽는 것
늦은 저녁상을 물린 당신은
습관처럼 내일의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형광등이 등대처럼 불을 밝힐
당신의 방, 작은 만灣
목발을 짚은 듯 물결치는 파도가
밀물로 들어와 당신 발목을 적시겠지만
등압선을 따라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봐야
사진 몇 장 걸어놓은 서쪽 창가
창문을 여는 당신
기압골 속에 빠진 기억
당신의 얼굴엔 내일의 비가 내리고
비파나무 이파리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같은
이별이 찰 텐데
슬리퍼도 없이 맨발이면 어떡하나
거리의 나뭇가지가 자동차 불빛에 많이 흔들리면
다음날 비가 온다는 것쯤은
굳이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신인데



*시집, 남방큰돌고래, 한국문연








변천사 - 현택훈



명태. 생태. 동태. 황태. 북어.


나를 부르는 호칭이 몇 번 바뀌면서 슬픔도 따라 변했구나.


언제나 난류 따라 헤엄치며 살고 싶으나 한류가 파랑을 일으키며 물결친다.


아직 이 해저의 바닥까지 내려간 적 없으나 언젠가는 이 바다의 밑바닥까지 가라앉을 것이다.


검붉은 불가사리들이 저승사자처럼 나에게 오리라.


점점 수분이 빠져나가 영혼이 말라가고 있다.


겨울엔 몸을 움츠린 채 봄을 기다린다.


꽝꽝 얼어버린 채 성에를 뒤집어쓴 희망.


코다리처럼 묶여서 가는 퇴근길 시내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 검푸른 바다를 유영한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로 슬픈 걸까.


참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결국 변한 것 하나 없는,





# 현택훈 시인은 1974년 제주에서 태어나 200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