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명인 - 육근상

마루안 2018. 3. 14. 23:09

 

 

명인 - 육근상

 

 

손바닥으로 읽는 소리북만큼이나

울림 큰 서적이 또 어디 있으랴

쇠가죽 단단히 동여맨 소리북통 덜렁 메고

수림으로 들어와 관절 굳어버린 사내

 

북채 쥐고 쓰러져 죽기를 원한다

침엽의 바람 오롯이 받아낸 식솔들이

무거운 저녁 짊어지고 들어와

밥상머리 숟가락 달그락거릴 때

천복 씨 뭉뚝하게 굵은 손가락 펴

소리북통 가죽끈 힘 있게 당겨본다

 

오늘 무슨 날인가

소리북통마저 바람 새고

천복 씨 문지방 장단 맞추는데

밖에 유성기음반복각판 긁는 듯

바람이 따그락 손장단 읽으며 지나간다

 

 

*시집, 절창, 솔출판사

 

 

 

 

 

 

북 - 육근상

 

 

까맣게 타들어간 것이 비비면 한 줌도 안 되겠다

퀭한 두 눈에 밟히는 소쿠리며 망태기

바람벽 기대선 지게 작대기 하나에도 눈시울 붉다

작달막하지만 탱자나무 북채 닮아 눈빛 푸르고

걸음걸이 기운 돌던 저 노구도

복수 불뚝하니 손녀딸 이름조차 간신히 잇몸에 걸린다

가죽 한 번 제대로 갈아 끼우지 못하고 일흔두 해 두드린 뱃바닥에

썩은 것들 모두 욱여넣었는가

뼈에 걸린 살갗마저 귀찮은 듯

대강 걸쳐놓은 낡은 윗도리 같다

대청 한 바퀴 돌아나가는 더운 바람이

한쪽 팔 툭 밀쳐놓는다

 

 

 

 

*육근상은 시를 쓰지 않으면 배길 수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시로 표현하며 소통하는 즐거움에 비할 것이 세상에 따로 없다. 그에게 시 쓰는 일은 생계에 얽매여 둔감해진 생명을 온전히 해방시키는 일이다. 죽어 있는 감각을 살려 공감, 공명하는 세상을 회복하자고 선동하는 일이다.

 

*권덕하 시인의 발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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