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마루안 2018. 3. 12. 19:56

 

 

 

김규항의 글을 좋아한다. 그가 사는 삶도 말도 글도 확실하게 본인이 좌파라고 인정하는 것도 좋다. 그가 불온하기 짝이 없는 B급 좌파여서 더 좋다. 얼마 전에 그가 만난 좌파들의 삶을 기록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좌파들의 좌판에 제대로 설득되었다.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살더니 제목도 많이 순화되었다. 제목에 확 꽂히는 책이 내용이 부실해서 실망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가끔 꺼내 다시 읽고 싶은 구절이 참 많다.

그는 용맹하게 고독해야 한다면서 <남이 보기에 내가 어떤가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만드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혼 없는 좀비가 되지 않는 비결은 내가 보기에 나는 어떤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혼자일 수 시간과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다.

<어느 단계부터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수정랑, 아니 난자 한 개라도 함부로 다루어선 안 될 생명이지만 진정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단계부터다. 사회적 이견을 가진 사람은 존중할 수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존중할 순 없다>는 문구가 서늘하게 스쳐간다.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란 바로 이런 문장이다.

<좋은 삶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존재해왔다. 남보다 많이 갖고 남보다 앞서는 게 좋은 삶이라는 생각. 그런 욕구는 있지만 나보다 못한 사람이 눈에 밟혀 더디더라도 함께 가는 게 좋은 샮이라는 생각.

앞의 것은 한줌의 지배계급에게 뒤의 것은 대다수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왔다. 자본주의는 앞의 것을 모든 사람의 생각으로 바꾼다. 남보다 잘 먹고 잘사는 걸 좋아라 하는 인간은 반쯤 죽은 인간이다> 배끼고 싶은 문장이다.

이 책의 엑기스라 할 수 있는 구절을 한 곳을 더 옮긴다. <흠이 없는 사람은 모두의 선생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친구일 순 없다. 나는 어디서나 좋은 사람 소리를 듣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세계는 헤아릴 수 없는 옳음과 그름으로 중첩되어 있는데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근거하면,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란 대개 가장 세련된 처세술을 가진 위선자들이다. 얼마간 쑥스러움이 있는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 언제나 당당하고 활기차기만 한 사람은 내면의 공포에 비명을 지르고 있거나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 느껴진다>

이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에게 잠시 뒤를 돌아보며 반성하게 만드는 문장이 여럿이다. 어떤 글에 설득된다는 것은 글쓴이의 삶도 사랑하게 된다는 의미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