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선배 수업 - 김찬호, 김융희 외

마루안 2018. 3. 4. 09:04

 

 

 

이 책은 읽기에 조금 거슬리는 경어체 문장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혀서 다행이다. 아마 여섯 명의 강사가 평소 내가 관심을 두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청중이 되어 강의실에 앉아 듣는 심정으로 단숨에 읽어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노년 인구 때문인지 요즘 중년 이후에 대한 자기 관리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편인데 대부분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이다.

허술한 내용으로 시대에 편승해 독자를 현혹하는 저자와 출판계의 상술 또한 대단하다. 그들도 먹고 살아야겠으나 출판계 만큼은 좀 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읽고 나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아무 책이나 읽지 않는 내가 열 권 읽어 겨우 한 권을 이 블로그에 언급할 만한 책을 건진다. 바로 이 책 선배 수업도 그중 하나다.

같은 출판사에서 비슷한 주제로 먼저 나온 책 <나이듦 수업>보다 이 책이 더 공감이 갔다. 가만히 있어도 나이는 저절로 먹는다. 그러나 꼰대 소리 듣지 않기 위해 부단한 자기 관리는 가장 중요한 노후관리다. 젊었을 때 가슴에 담은 숱한 꿈들을 꾸기만 했지 이루지 못한 내가 50대가 되고 보니 나이가 더욱 무섭게 다가온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먹은 만큼 나잇값을 해야하는 확실한 숫자다. 그래서 무섭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해도 주변에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었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대책 없는 노인들이 많다. 저절로 먹은 나이이기 때문일까? 늙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이 책에도 언급하지만 언제가부터 노인이란 단어 대신 어르신이란 말이 널리 쓰인다. 문제는 호칭이 아니라 그 사회가 어떻게 인식하느냐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니 그때부터 갑자기 당선자가 아닌 당선인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당선인이란 말을 쓰면 격이 올라가는가? 김대중 노무현은 당당히 당선자였다.

그럼 유권자와 청취자나 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노숙자를 노숙인으로 부른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지 않는한 똑같다. 노숙자를 감춰야 할 것이 아닌 그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사회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호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불러서 과연 달라진 것이 있는가?

이 책의 저자들의 나이가 대부분 나와 비슷하지만 모두 나의 스승들이다. 몰랐던 것들, 잊고 있었던 것들을 깨우쳐 준 고마운 분들이다. 좋은 책이란 읽고 나서 지적 호기심이 발동해 다른 책을 찾아 읽게 만든다. 또한 별것 아닌 평범한 것에서 깨달음을 얻게 만들기도 한다. 읽으면서 배우고, 하면서도 배운다.

내가 좋아 하는 작가이기도 한 나쓰메 소세키의 하이쿠를 언급한 것도 반가웠다. 좋은 책이란 이래저래 배우는 게 많아 한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부자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홍시여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