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 이종형 시집

마루안 2018. 4. 21. 22:29

 

 

 

간만에 좋은 시집 하나 만났다. 며칠 전 이종형 시인이 5.18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학상 받은 시집치고 감동을 준 시집이 별로 없었던 경험 때문에 며칠 미적거리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들었는데 시편 하나 하나가 심금을 울린다.

이틀에 걸쳐 세 번을 반복해서 시집 전체를 읽었다. 내가 요 근래 이렇게 반복해서 읽은 시집이 있었던가. 희안하게도 읽을수록 감동이 배가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 명료하게 들어오지 않던 시도 두 번째에서 확연하게 가슴에 박혔다.

한 사람의 일생이 시집 전체에 담겼다고 해도 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묶은 시집임을 느꼈다. 실제 시인은 마흔 여덟에 늦깎이로 문단에 나왔고 데뷰 13년 만에 첫 시집을 냈다. 시집에 실린 시 전체가 고른 작품성을 갖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어느 시 하나도 그냥 넘길 수 없게 깊은 울림을 주는 시편들이다.

시인은 1956년 1월에 제주에서 출생했다. 음력으로는 1955년 11월 23일 생이다. 이것은 이 시집에 실린 자신의 출생을 담담하게 표현한 <자화상>이란 시에서 알 수 있다. 시인의 아버지는 제주 항쟁의 마무리를 위해 육지에서 파견된 육군 대위였다.

나이 든 군인은 제주 처녀를 만나 시인을 낳았다. 물론 외할아버지는 육지것에 대한 불신으로 외손자의 출생을 반기지 않았다. 시인이 세 살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재가를 한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가슴에 담고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란다.

훗날 아버지가 제주에 오기 전 육지에서 결혼해 육지에서 낳은 형제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육지것 사위를 불신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형제는 중년이 되어 첫 상봉을 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다른 형제는 둘 다 아버지를 빼다 박아 만남과 동시에 단박에 형제임을 증명한다. 모두 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한때 비극의 섬이었던 제주에 육지것 군인이 건너가서 이런 시인을 만들어낸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이것으로 요절한 아버지의 슬픈 인생은 충분히 빛나고 남는다고,, 훗날 시인은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평생 가슴에 담았던 원망을 떠나 보낸다.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이라는 슬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실린 시들 절반 이상이 4. 3 제주 항쟁에 관련된 내용이다. 시인과 직접 관련이 있어선지 읽을수록 절절하게 다가오는 시편들이다. 이런 시집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긴 여운이 아직도 절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