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미식가의 허기 - 박찬일

마루안 2018. 3. 7. 19:03

 

 

 

이 사람의 책을 참 많이 읽었지만 이제야 후기를 남긴다. 문학을 전공한 요리사란 직업이 흥미로워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 사람이 운영한다는 혹은 일한다는 식당에 몇 번 가서 음식을 먹기도 했으나 음식으로는 그리 감동을 받자 못했다.

이 책을 비롯해 그가 쓴 책은 늘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탈리아 요리를 시작으로 한국의 오래된 식당을 찾아 문화를 발견하고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음식 문화가 일천한 우리에게 이런 작가는 큰 자산이다.

외국 생활을 할 때 궁금했던 것은 왜 우리에게는 음식 문화가 부실한가였다. 프랑스, 중국, 터키 등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음식은 빼고라도 일본이나 태국 음식이 글로벌 음식으로 먹히는 것이 부러웠다. 기껏 우리 음식은 호기심 많은 몇몇 미식가의 흥미를 자극하는데 그쳤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음식에 대한 단상을 사계절로 나눠 다루고 있다. 하긴 같은 음식도 계절에 따라 영양가와 맛이 다르다. 음식에 대한 추억 또한 계절 음식에서 기억되는 것이 많다. 요즘이야 제철 음식이 많이 희석되기는 했어도 추억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저자는 빼어난 문장력으로 음식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 내어 독자의 입맛을 돋운다. 글을 읽으면서 잊었던 음식이 생각나 아! 그랬었지를 연발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가난을 양분으로 성장한 시절이 있었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그래서 소박한 음식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나와 꼭 닮았다. 닮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의 일부를 옮긴다. 여기에 더 이상 무슨 감상을 더 보태랴. 책 읽은 행복은 맛있는 이 문장 하나로 충분하다. 

<내 미각은 실은 미식의 반대편에 있다. 거칠게 먹어왔고, 싼 것을 씹었다. 영양과 가치보다 주머니가 내 입맛을 결정했다. 함께 나누는 이들의 입맛이 그랬다. 소 등심 대신 각 떨어진 돼지고기를 구웠고, 조미료 듬뿍 든 찌개에 밥을 말아 안주했으며, 노천의 국굿집에서 목숨처럼 길고 긴 국숫발을 넘겼다. 그것이 내 몸을 이룬 음식이니, 미식이란 가당찮다.

그럼에도 미식이라고 할 한 줄기 변명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순전히 음식의 건실한 효용을 사랑했던 것이다. 가장 낮은 데서 먹되, 분별을 알려고 했다. 뻐기는 음식이 아니라 겸손한 상에 앉았다. 음식을 팔아 소박하게 생계 하는 사람들이 지은 상을 받았다. 그것이 미식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미식의 철학적 사유와 고급한 가치의 반대편에 있는 저 밥상들이 나는 진짜 미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