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두 외가 - 정원도

마루안 2018. 3. 11. 18:48



두 외가 - 정원도



나는 외가가 둘이었다


늘 과거의 저편에서
막연한 그리움으로 맞아주던 신서동 외할머니는
어린 나를 보기만 하면 두 손을 맞잡고
그렁그렁 마른 눈물만 대청마루에 떨구셨다


할머니 정갈한 걸레질로 닳은 툇마루엔
한겨울일수록 살얼음 꽃이 피어났다


방학만 되면 통과의례처럼
내가 소포로 부쳐지던 청송 외딴골짝 외할머니는
물갈이로 생겨난 온 몸의 두드러기를
혀 끌끌 차며 갈라터진 손바닥으로 등목沐해주셨다


구렁이가 정낭 돌담 사이로 기어 나오기도 해
똥 누다가 기겁하여 줄행랑치던 날은
할머니 낡고 까칠한 삼베옷이
짙게 드리워진 산그늘만큼이나 아득했다


손자들 공부 따라 도회로 나온 후에도
어머니 팔자타령이 나를 구박하면
먼데 도망 온 학교까지 도시락을 품고 따라와


꽁보리밥 도시락 퍼먹을 때마다
할머니 마른 젖가슴 냄새가 배어났다




*시집, 마부, 실천문학사








셋째 어머니 내력 - 정원도



겨울날 나를 업고
꽁꽁 언 몸으로
광목 이불 빨래를 하던 어머니가
어슴푸레 상여로 떠나신 날
막걸리에 취해 상복을 입은 아버지와
한산하던 문상객들 몽롱한 기억만 남았다


무섭고 무뚝뚝한 말씨가 들어온 후
구질구질하던 마당도 겨우 반듯해져서
걸핏하면 쉬던 마차도 들로 과수원으로 돌았고


화사한 분 냄새에 고운 한복이
딱 하루 머물다 간 적도 있는 탓인지
나는 어미 셋 둘 팔자라는 단골 무당집으로 불려가
무당 어미와 작은 불상에 큰 절 올렸다


다시는 새어머니 안 생기게 해 달라고 빌며
그 언약으로 받은 수저로
꾸역꾸역 밥 퍼먹을 때마다
미루나무 꼭대기 막막하던 슬픔도
함께 퍼먹었다





# 정원도 시인은 1959년 대구 반야월에서 출생하여 대구공고 기계과를 졸업했다. 포항공단의 강원산업에 입사하여 10 여년을 근무 중 1989년 본사로 전출되었다가 2000년 퇴직 후 건설기계 관련 자영업 중이다. 1983년부터 포항문학에 작품 발표. 1985년 <시인>지에 <삽질을 하며> 등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흙, 1988년> 이후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23년 만에 <뀌뚜라미 생포 작전>을 내며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마부>는 세 번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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