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난은 사람을 늙게 한다 - 김사인

마루안 2018. 3. 11. 18:08



가난은 사람을 늙게 한다 - 김사인



삶은 보리 고두밥이 있었네.
달라붙던 쉬파리들 있었네.
한줌 물고 우물거리던 아이도 있었네.
저녁마다 미주알을 우겨넣던 잿간
퍼런 쑥국과 흙내 나는 된장 있었네.
저녁 아궁이 앞에는 어둑한 한숨이 있었네.
괴어오르던 회충과 빈 놋숟가락과 무 장다리의
노란 봄날이 있었네.
자루 빠진 과도와 병뚜껑 빠꿈살이 몇개가 울밑에 숨겨져 있었네.


어른들은 물을 떠서
꿀럭꿀럭 마셨네.
아이들도 물을 떠서 꼴깍꼴깍 마셨네.
보릿고개 바가지 바닥
봄날의 물그림자가 보석 같았네.
밤마다 오줌을 쌌네 죽고 싶었네.
그때 이미 아이는 반은 늙었네.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둥근 등 - 김사인



귀 너머로 성근 머리칼 몇올 매만져두고
천천히 점방 앞을
천천히 놀이터 시소 옆을
쓰레기통 고양이 곁을
지난다 약간 굽은 등
순한 등
그 등에서는 어린 새도 다치지 않는다
감도 떨어져
터지지 않고 도르르 구른다
남모르게 따뜻한 등
업혀 가만히 자부럽고 싶은 등
쓸쓸한 마음은 안으로 품고
세상 쪽으로는 순한 언덕을 내어놓고
천천히 걸어 조금씩 잦아든다
이윽고
둥근 봉분 하나


철 이른 눈도 내려서 가끔 쉬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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