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방랑자의 넋두리 - 이철경

마루안 2018. 3. 10. 20:03

 

 

방랑자의 넋두리 - 이철경


포커라 호수 옆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네
한참이 지난 후,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거야, 라고

그 한참이라는 시간이 경과 후
사진을 보며 그때를 생각하네
과거 속 박제된
사진 속에 스며 있는
그 기억을 그리워할 거라고,
그때 당신과 함께라면
만년설이 쌓인 히말라야 눈 속에 묻히더라도
핼복할거라 생각했었지
때로는 죽음이 현실보다 아늑하다고
불현듯 생각하면서

훗날 또,,,, 오늘을 그리워하나니
그래서 더 나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나니.
죽음은 그리워하지 않아도
어차피 오는 것.


*시집, 죽은 사회의 시인들, 천년의시작


 

 



패배자 모임 - 이철경


키 작은 패배자 셋이 우연을 빙자한 모임에서
오십 넘어선 구차한 내력을 서로 끄집어내어 서로 핥고 있다.

그 시절 꽃다운 나이게 아이를 키워서 잡아먹은 무시무시한 얘기와
지금은 머나먼 타국에서 아이 낳고 드라큘라 성에서 잘 살고 있다는 말,
아그네스는 여전히 약 팔고 있는지 수소문하던
순수한 패배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진 못했다.

그 시절 3명의 4차원이라 불리던 B형과 P형
그리고 이름도 잊은 예쁠 것도 없는 나이 많은 그 여자는
기둥 하나 뽑아서 등단 완장을 차더니, 미친 여자처럼 여기저기
새벽안개처럼 시단을 휘돌아다닌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택시를 몰까, 섬으로 갈까, 아니야, 사기를 칠까,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다.
아파트 이자로 일억을 내다 보니 두 쪽의 불알밖에 없다는
백수 수개월에 사회보장제도를 누리게 됐다고 말하고
신용불량자 빚 얘기를 하며 파산을 언제 할까 고심 중이다.
사는 게 이골이 난 그들이 깨우친 진리 하나 탁 뱉어낸다.
사는 건 요령으로 버티는 거야.

키가 가장 작은 패배자는 연신 죽기 전에 타인의 구멍이 궁금하다고
암중모색인 이루어질 수 없는 꿈 하나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한 살 더 먹어가며 나이와 상관없이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늘 공평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더는 희망이 없는 정치보다 자신들이 더 큰 문제인 줄 모른다.
밤을 태워가며 밤하늘의 별이 사그라질 때까지
기억의 끝자락에 묻혀 있던 친구들을 파내고 있었다.
끝내는 먼저 어린아이가 된 한 명이 술상에 머리를 찧자,
투덜거리며 너덜대는 몸뚱이를 질질 끌고 각자 집으로 향한다.

 




*시인의 말

내가 나에게

내가 나에게 다독이며 말한다.
더 할 말이 남아있으면 시를 쓰라고,

어디에도 전할 수 없는 말은
시로 남기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시가 하찮게 느끼더라도
가치 있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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