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새로운 인연을 위해 - 김일태

마루안 2018. 3. 7. 21:32

 

 

새로운 인연을 위해 - 김일태

-영월의 일기. 32

 

 

이승의 당신 모습 무던해져 가고

내생에 다시 만날 인연 그려보면서 가슴 설레게 되네요.

내 곡진 이력이 내생에 무슨 부귀영화 담보할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다만

후회 없이 살았다 라고만 여기지요.

다시 같은 삶 주어지더라고 또다시 이런 인연을 택하고

왔던 길 밟아올 것 같아요

이제 곧 당신이 기다리지 않는 곳으로의 긴 여행이

시작되겠지요.

오랫동안 채비를 해온 터여서 걱정도 없고

가을 나뭇잎처럼 가벼이 홀가분히 떠나려 해요.

천주산을 내려 갓골 도계 건너 명곡 바다로 흘러간 물

다시 거슬러 오르지 않듯

우리들 세월 그리 흘러갔다지만

길 끝에 다른 길이 시작되듯이

땅과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서로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듯이

새로운 인연도 그리 돌 거라 나는 믿지요.

오늘은 손 없는 날이라

환갑 때 내 손으로 지어둔 수의를 꺼내

다리고 곱게 개어 장롱에 다시 넣었지요.

 

 

*시집, 오동나무에 걸린 새벽달, 불휘미디어

 

 

 

 

 

 

세상은 온통 소리 없이 조용하고 - 김일태

-영월의 일기. 36

 

 

소쩍새 우는 새벽에 깨어

마음을 가라앉히니

바람이 건듯 다가와 묻네요.

너 한 생 어떠했느냐고

 

고드름처럼 얼려서 내리고

가끔은 가파른 벽 얼려서 타고 올랐다고

 

답하니 다시 고쳐 묻네요.

지금은 어떠냐고

 

다 녹아 모두 모두 흘러가 버렸다고

 

달빛 인 천주산은 눈을 쓴 듯 하얗고

풀벌레들도 모두 자는지 천지가 고요하여

오리 밖 도계천 물소리 들리네요.

 

 

 

 

*백영월白映月(1854-1921): 화해와 사랑을 실천한 자선가

 

백영월은 창원 의창구 북동 출신의 기생이자 자선가로서 1854년 10월 7일에 태어나 1921년 2월 13일에 사망하였다. 본관은 수원이다. 조선 말기 경제 활성화와 신분제도의 붕괴, 사상적 변화가 크게 일던 시기에 태어나 성장했으며, 선진 강대국들의 외세 침탈이 극심했던 구한말과 일제강점 초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온몸을 던져 살다간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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