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映

리틀 포레스트 - 임순례

마루안 2018. 3. 7. 18:31

 

 

 

임순례 감독의 영화는 꼭 본다. 불 꺼진 객석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가슴을 설레게 하는 영화가 몇이나 될까. 임순례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특히 과거의 영화에 비해 많이 순해졌다. 데뷰작이 너무 독해서일까. 그의 영화는 무겁고 진지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많았다.

 

그 점이 내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긴 하다. 이 영화는 순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있다. 이 영화는 음식영화다. 그래서 밋밋하게 흘러갈 수 있는 영화가 음식으로 확실하게 잡았다. 그렇다고 요즘 공중파 방송부터 종편까지 게걸스럽게 내 보내는 먹방과는 구별된다. 음식 프로가 이 정도만 된다면 얼마든지 봐주겠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배우도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연기가 다르다. 김태리의 꽉찬 연기, 그리고 출연 분량은 많지 않지만 엄마로 나온 문소리가 중심을 잘 잡아줬다. 임순례 감독은 세 친구라는 전작을 보듯 친구도 셋으로 세트를 이룬다.

 

엄마는 홀로 키운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말없이 집을 나간다. 망연자실 엄마를 원망하며 대학생활을 하던 혜원은 도시 생활에 지친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잠시 고향집에 머물기로 한다. 이미 내려와 농사를 짓는 친구도 반긴다.

 

혜원은 비어 있는 고향집에서 집 나간 엄마의 흔적 때문에 혼란스럽다. 혼자 고향에서 키운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 때마다 엄마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있는 재료로 뚝딱뚝딱 조물조물 음식을 해 내던 엄마의 마술 같은 손을 혜원은 닮았다. 수수하면서 격조가 있는 음식은 사람의 혀를 감탄시킨다. 잠깐 머물다 가려했는데 봄이 오고 여름, 가을이 가도 떠나지 못한다.

 

특별한 사건도 갈등도 없이 영화는 고향의 사계절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영상 예술이긴 해도 특히 이 영화는 영상미가 빼어나다. 저절로 뭉친 가슴이 씻기는 기분이다. 거기다 세 친구의 풋풋한 우정과 함께 음식에 담긴 추억으로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이 지친 관객을 깔끔하게 위로한다. 담백하게 여운이 남는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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