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 오세영

마루안 2018. 3. 6. 19:29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 오세영



어제의 바람이 오늘 또 불고,
지난해 피었던 꽃이 올해 다시 피고,
며칠 전 서쪽으로 가던 달이 또
서쪽으로 가고
오늘은 황사가 가득 날렸다.
내년 이맘때쯤 황사는 다시 올 것이다.
어제의 구름이 오늘 또 흘러가고,
작년에 북쪽으로 날던 기러기가
올해 또 북으로 가고,
오지 않을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그를 기다리며 턱수염을 말끔히 밀고
그래도
무엇인가 모를,
단지 어제보다 나을,
그러면서도 그 낫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그 어떤 것을
기다리며 다시 하루를 맞는다.
그것을 희망이라 부르면서
희망이 있어야
산다고 하면서.



*시집, 북양항로, 민음사
 







나이 일흔 - 오세영



한세상 사는 동안, 새는
구름 한 점 물어 오기 위해
매일매일
비상을 감행하는지도 모른다.
내 한생이 시를 좇아 그러했듯이


그러나 구름은 실상
허공에 뜬 한 줄기의 연기,
수십억 년
바람이 꽃잎을 날려 왔듯,
햇빛이 그림자를 그리고 또 지워 왔듯,
심심한 하늘이 얼굴을 드러내
실없이 허공에 짓고 허무는
장난.


눈이 어두워진
내 나이 이제 어느새 일흔,
창밖
마른 나뭇가지 끝에 앉아 아직도
흰 구름을 우러르는 노년의
새 한 마리를 본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기 난다 - 박철  (0) 2018.03.06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 조기조  (0) 2018.03.06
선창, 만석부두 - 고철  (0) 2018.03.06
추억에게 - 정윤천  (0) 2018.03.05
어제처럼, 그 어제처럼 - 최준  (0) 2018.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