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 조기조

마루안 2018. 3. 6. 19:46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 조기조


오바로꾸 미스 김이 그만둔단다
어찌 생각하면 좀 창피하기도 해서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오바로꾸 미스 김이
이번 달만 하고 그만둔단다

미스 김이 그만둔다니
심란해하는 총각들 중에
말은 안해도 신바람이 난 건
칙- 칙- 휘파람 불어대며
프레스 밟는 스물 일곱 박 기사다

둘이 눈 맞은 건 지난 봄 임투
박 기사 깨진 마빡을 미스 김이
머리띠 끌러 싸매준 거다

죽고 못사는 미슨 김 박 기사가
차마 한 살림 차릴 형편은 못 되어서
한 삼 년만 기다리자고 약속은 했는데
덜컥 아이가 생기고 말아
식은 나중에 올리기로 하고
그냥 살기로 했단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즤 엄마 아빠를 하나로 엮어준 거다.


*시집, 낡은 기계, 실천문학사

 

 

 

 

 

 

무공해 빵 - 조기조

 

 

그녀는 이미 늙어 더 이상 매춘을 하지 않는다

이제 막 아메리카 꿈에서 깨어난 그녀는

자궁 속에서 새어나간 미완의 검고 흰

인형들이 스물 몇 개인지 가뭇하기만 하다

 

그녀는 이미 늙어 한글을 깨치기 위해

국민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다만 빵틀 앞에 앉아

아메리카 꿈을 잠시 맛본 대신 썩어버린 자궁 속에

방부제를 뿌리며 무공해 빵을 굽고 있다

 

그녀의 무공해 빵틀은 중절수술을 받을 필요도 없다

검고 흰 인형들의 국적은 "꿈의 아메리카" 그러나

그녀의 빵꿈은 의정부시 고산동 "두레방"에

자리를 잡고 구수하게 익어가고 있다

 

그녀의 무공해 빵은 더 이상 유산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녀의 무공해 빵은 이제 화려한

유해 색소의 공해로부터

양키의 아침 식탁을 보호하고 있다.

 

 

 

 

# 조기조 시인은 1963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낡은 기계>, <기름 미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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