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중년을 보다 - 김일태

마루안 2018. 3. 5. 20:48

 

 

중년을 보다 - 김일태

 

 

싸울 상대가 보인다는 것은

선수가 되었다는 증거다

 

두 발 들고 항복하는 것처럼

엄살떠는 과장도 필요하다

 

최후의 항전처럼

작은 일에도

독거품 뻐끔뻐끔 물어야 한다

 

전진 후퇴 전법은 고전적인 것

좌우로 밟는 노련한 발놀림으로

이념도 유연하게 건너야 한다

 

들어와 덤빌 테면 덤비라고

기권은 없다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더라도

두려움은 나를 지키는 호위무사라고 내질러야 한다

 

함부로 건들면 같이 죽는 수 있다고

두 주먹으로 가슴 치며 파이팅 외치는

인파이터 복서 같은

게 같은 중년(中年)

 

 

*시집, 부처고기, 시학사

 

 

 

 

 

 

녹슨 관계 푸는 법 - 김일태

 

 

녹슨 나사같이 해묵은 갈등

섣불리 억지로 풀려 들면 나사처럼

대가리만 부러져

영원히 풀 길 없어지고 말지

 

사람이나 나사나 주위를 조심조심 두드려

덥혀 있는 오해의 녹 털어 내는 일이 먼저지

잘 못 채워진 본질 드러나면

그다음 기름칠이지

 

기름은 깊이 스며들도록 듬뿍 먹여야 하지

나사는 정확히 조일 때의 역방향으로, 이때

힘 조절이 필요하지

 

푼다는 것은

바꾸어 다시 단단히 엮는다는 역설

모든 탈의 복구가 역순이듯이

 

이긴다는 것은

작은 물러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 때

녹슨 관계

비로소 풀리지

 

 

 

 

# 김일태 시인은 1957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1998년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수개리>, <호박을 키우며>, <어머니의 땅>, <바코드 속 종이달>, <코뿔소가 사는 집> 등이 있다. 마산 MBC 피디를 거쳐 전략기획실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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