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을 보다 - 김일태
싸울 상대가 보인다는 것은
선수가 되었다는 증거다
두 발 들고 항복하는 것처럼
엄살떠는 과장도 필요하다
최후의 항전처럼
작은 일에도
독거품 뻐끔뻐끔 물어야 한다
전진 후퇴 전법은 고전적인 것
좌우로 밟는 노련한 발놀림으로
이념도 유연하게 건너야 한다
들어와 덤빌 테면 덤비라고
기권은 없다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더라도
두려움은 나를 지키는 호위무사라고 내질러야 한다
함부로 건들면 같이 죽는 수 있다고
두 주먹으로 가슴 치며 파이팅 외치는
인파이터 복서 같은
게 같은 중년(中年)
*시집, 부처고기, 시학사
녹슨 관계 푸는 법 - 김일태
녹슨 나사같이 해묵은 갈등
섣불리 억지로 풀려 들면 나사처럼
대가리만 부러져
영원히 풀 길 없어지고 말지
사람이나 나사나 주위를 조심조심 두드려
덥혀 있는 오해의 녹 털어 내는 일이 먼저지
잘 못 채워진 본질 드러나면
그다음 기름칠이지
기름은 깊이 스며들도록 듬뿍 먹여야 하지
나사는 정확히 조일 때의 역방향으로, 이때
힘 조절이 필요하지
푼다는 것은
바꾸어 다시 단단히 엮는다는 역설
모든 탈의 복구가 역순이듯이
이긴다는 것은
작은 물러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 때
녹슨 관계
비로소 풀리지
# 김일태 시인은 1957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1998년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수개리>, <호박을 키우며>, <어머니의 땅>, <바코드 속 종이달>, <코뿔소가 사는 집> 등이 있다. 마산 MBC 피디를 거쳐 전략기획실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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