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는 통속적이다 - 조용환

마루안 2018. 3. 4. 09:57



그는 통속적이다 - 조용환



집을 나서면 그 눈의 조리개는 분리
재조립된다 조율된 신호등, 여러 마리의
애완견들 여럿인
네루다 꽃무덤 핫팬티 깃발 뚱단지....
이런 도구들은 고위 관료들처럼 품위를 잃지 않는다
우아한 교양으로 우산을 팔에 걸치고
셰익스피어처럼 골목마다 밑줄을 그어놓는다
당신의 나팔꽃은 오늘따라 황금빛이군요
얼굴은 늘 그렇듯이 굴렁쇠 소리가 난다
지청구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친절하다
그는 언제든 나이로비로 떠날 것이다
매력적인 여자와 요트와 영화처럼 그러나

넌 싸구려야! 절레절레 흔들며
지나가는 푸른 턱,
그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부비부비
엉덩이를 흐억, 만져주고 싶었다
하룻밤 그렇게 너는 내 운명이야
최고의 체위와 표현 신음소리를 동반하면서
삼류 영화처럼 속절없을 때
산전수전 다 겪은 뽕짝은 울리고
휘황찬란을 지나 주인공은 스윽,
썩소를 날린다 오, 사랑스러운!
저 순진무구!
이 풍진세상!
친절과 우아함과 다감한 표정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처세,
가설극장의 연출이란 투박하되 깔끔한 배후,
원숭이들이 백 년 후쯤에는 이따위 요설들을
기억이나 할까마는



*시집, 숲으로 돌아가는 마네킹, 문학의전당








거대한 유리창 - 조용환



이것은 막장 드라마가 아니야
열정 없이 하루를 보냈다고 누가 흉보겠어?
지붕처럼 지겨운 날도 있었어
한 뼘을 재도 고작 한 뼘인
암전된 무대처럼 말이야
아침저녁으로 무한 반복되는
그게 그거지만
자꾸만 목이 마르는 게 무슨 병인지 몰라,
그래도 나는 순정했어 영웅을 기다렸지
코미디처럼 알록달록한 정치,
그래서 나는 마약을 숭배하지
돈 티브이 키스.... 현실적이지 못한
충고를 혀 빠지도록 찬양하지
이것은 막간이 아니야
동공이 클로즈업되고 화면이 분할된
정지 화면, 그런 기적은 본 적 없지만
해가 뜨든 천둥이 몰아치든
미풍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지만
붉어지고 까매지고 가벼워지고 무거워지는
내 머리카락은 몇 가닥이나 되나?
하룻밤 새에 헤아릴 수 없듯이
해피엔딩과 오프닝이 헷갈린다
나는 내 삶에 중독됐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 두고 온 저녁 - 김명기  (0) 2018.03.05
너무 일찍 온 저녁 - 허수경  (0) 2018.03.05
늙은 나무가 사는 법 - 양문규  (0) 2018.03.04
쉰 살의 맨손체조 - 강형철  (0) 2018.03.04
한나절 간다 - 이선이  (0) 2018.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