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한나절 간다 - 이선이

마루안 2018. 3. 4. 08:47



한나절 간다 - 이선이



귓밥을 파주는 일로도 한나절 간다
생각을 눈저울로 퍼내며
한나절 간다
연무른 분홍손톱을 깎으며
생각에 또 생각
힘없이 주저앉은 꽃송이에
꽃대의 한나절 간다
모든 사랑이 나를 향한 칼이 되어 돌아오는 날
제살을 뚫고 나온 손톱을 깎으며
무른 살갗을 떼어내며
꾹다문 꽃봉오리 터져나는 소리에 한나절
간다, 꽃같은 한 생애



*시집, 서서 우는 마음, 청년정신








반달 - 이선이



품으로 가는 마음도
버리고 가는 마음도
무겁구나, 당신


풋기운에 열린
속꽃 모양
속내 이야길랑
사내 이야길랑


한 반생은 비 내리고
한 반생은 흐벅져서


한움큼 어둠으로나
다독이려나
버거운 그리움의 능선을 닮은,


당신





# 오래전의 시집을 들척인다. 긴 유통기한을 가진 시에서 방황하던 지난 날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나를 들볶으며 안달을 했는지,, 흰머리가 보이자 노안이 찾아 왔다. 이제 비문증을 사랑하면서 조금 여유를 가져도 좋겠다. 시인의 자서를 뒤늦게 옮긴다. 다행이다.


자서


내게 주어진 아픔을 섬기려고
꽃 말고 꽃 진 자리에서
서서 운 마음들이여,
여기까지 따라와 一家를 이루고 말았구나.
그늘로 이어진 이 집에서
이제 걸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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