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쉰 살의 맨손체조 - 강형철

마루안 2018. 3. 4. 09:37

 

 

쉰 살의 맨손체조 - 강형철

 

 

적수공권으로 세상을 사는 일이야

견디면서 어떻게 해왔다지만

쉰 살에 맨손체조는 어찌해볼 수 없는 깜깜 절벽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쉬워도

360도 돌리는 일은 안 된다

팔을 흔드는 일은 쉬워도

동시에 발을 움직이는 동작은 어렵다

습관적으로 숨이야 쉬어왔지만

팔다리를 흔들면서 숨 쉬는 일은 안 된다

 

쉰 살에는 일들이

팔다리 어깨 발 도처 어디든

눌어붙어 있어서

그 일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맨손체조는 어렵다

 

단순한 소주잔 꺾기나

일에 눌려 한숨을 쉬는 것은 몰라도,

 

 

*시집, 환생, 실천문학사

 

 

 

 

 

 

틈 - 강형철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그는 24시간 사우나로 간다

구두를 벗어 번호표를 챙기고

런닝과 팬티를 벗어 옷장에 넣은 뒤 열쇠를 발목에 찬다

 

샤워를 하고 온탕에 몸을 담갔다가

숯가마로 들어선다

사람들이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다

 

그는 우툴두툴한 멍석 위에 드러누워

얽어진 볏짚들이 지져온 세월 이야기를 듣는다

서서히 땀이 난다

 

그는 밖으로 나와서 식혜 한 잔을 먹고

땀을 식혔다가 자수정 불가마로 간다

별들이 수정 뒤에서 열을 보낸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다시 밖으로 나와 땀을 식혔다가

피곤이 몰려와 바닥에 엎어져 잠을 잔다

발을 누가 차는 것 같아 눈을 뜬다

 

"당신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쉴 수가 없소"

 

그는 슬그머니 일어나 온탕에 간다

몸을 서서히 잠갔다가 슬쩍 눈을 감는다

5분도 못 있고 밖으로 나와 몸을 닦는다

 

그가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 사이의 틈만 누비고 경쾌하게 입구로 걸어간다

 

 

 

 

# 강형철 시인은 1955년 전북 군산 출생으로 숭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5년 <민중시> 2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해망동 일기>. <야트막한 사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환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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