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간다는 것 - 나호열
어느 물길을 거슬러 오르나봐
강원도쯤
강원도하고도 정선쯤
정선하고도 아우라지쯤 가닿으려나 봐
한동안 머물렀던
양수의 기억
그 끄트머리 어디쯤에서
하늘의 치마끈이 풀렸는지
그 물빛
그 내음이 흠씬 물들어 있나봐
몸을 웅크린 저 조약돌들
나보다 먼저 거슬러 올라온 연어 떼인듯
여생(餘生)과 후일(後日)이 같은 뜻이라는 걸
문득 바라보는
아우라지의 저녁쯤
*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문학의전당
덤 - 나호열
오늘을 살아내면
내일이 덤으로 온다고
내가 나에게 주는 이 감사한 선물은
가난해도 기뻐서
샘물처럼 저 홀로 솟아나는
사랑으로 넘친다고
길가의 구부러진 나무에
절을 하는 사람이 있다
먼지 뒤집어쓰고 며칠 살다 갈
작은 꽃에
절을 하는 사람이 있다
#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맑은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다. 긴 겨울을 밀쳐내고 봄이 빼꼼 고개를 내미는 요즘 손에 잡은 시인의 시집이 유난히 반갑다. 나이 먹은 사람이 천대 받는 시절에 완숙미 가득한 시에서 곱게 쌓은 시인의 나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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