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는 너무 먼 거리에 와 있다 - 조찬용

마루안 2018. 2. 28. 22:10

 

 

나는 너무 먼 거리에 와 있다 - 조찬용


나는 너무 먼 거리에 와 있다
유목민을 꿈꾸었던 그 나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다
말을 타거나 걷는 것이 유일했던
그 푸른 나라로 어머니를 부르던 게 아득하다
살아있는 것들로 축복을 쏘아 올린
어린 날을 생각하기엔 너무 먼 거리에 와 있다
너무 많은 것들로 불면의 밤이 늘고
어두운 시간은 기억에 묻힌 것들에 기대어 서성댄다
우리들의 밖은 기계들의 숲에서 만들어진 길로
언제부터인가 세상이 시들해져 버렸다
삶으로 배가 부르던 잠깐의 일도
해가 지고 밤이 드는 순간 시시하고 지루해져 버렸다
어느 날 아무런 낌새도 없이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일이
사는 일의 그림자가 돼 버렸다
숲과 사람이 사라지고
내가 걸어서 가야 할 마을이 사라져버린 지금,
애써 저녁의 성찬을 기다리는 일은 데데하고 지루하다
숲을 넘어 깊은 우물에 묻혔을 그 기억의 동산
그 회로를 따라 산을 넘기엔
나는 너무 먼 거리에 와 있다

 

 

*시집,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북랜드

 

 

 

 

 

 

기다림, 그 지독한 사랑 - 조찬용

 

 

어둡고 쓸쓸한 사랑을 기다린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온몸이 무겁도록 차오르는 사랑을 기다린다

그만하면 사랑이 지워질 때도

그만하면 불꽃도 사위어질 때가 되었다고

남들은 말한다

아, 그러나 제 살을 도려내듯

사랑이 베어져 그 흔적 지워질 수만 있다면

몇 백 번인들 타버린 가슴 도려내지 못하겠는가

한 번의 사랑으로

천년의 깊은 못이 박힌 심장을 그대는 아는가

그러나 오늘도

날은 저물고 그대는 아니 온다

오래된 칡덩굴에도 시절이 오고 꽃이 피고

가을이면 모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그대도 강물을 거슬러 올 수도 있을 텐데 하는

부질없는 기다림만 잡풀처럼 키운다

나는 그대를 기다릴 것이다

사랑을 기다리는 일이

한평생을 마주하는 일이라 해도

오지 않는 그대를 운명으로 기다릴 것이다

그 지독한 한 번의 사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