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기차, 눈발보다 가벼운 - 원무현

마루안 2018. 3. 1. 10:57



기차, 눈발보다 가벼운 - 원무현



숨이 턱까지 차 오른 기차의 옆구리가 열리자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막내 시집살이는 어떠냐
서방불알은 요즘 잘하고 있냐 정중동
엉덩이 훔친다던 부장녀석 손목은 아직도 붙어 있다니
뭐 붙었다고 까짓 팔 몸이 아직은 있으니 등록금은 걱정 말더라고
때아닌 매화가 피었다더니 그걸 두고 어찌 이사할래


대륙을 달려온 엔진처럼 뜨끈뜨끈한 말!


눈발처럼 배회하던 파리한 입술들이
말들에게 흡착되자
기차는 미끄러져 갔다
눈발보다 가볍게
스르르



*시집, 홍어, 한국문연








홍어 - 원무현



시집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라버니 이제는 가세가 조금 일어서서
가끔 산에도 올라간답니다
작년 겨울에는 눈 구경갔다가 팔이 부러졌어요
걱정마세요 오라버니
놀다가 부러질 팔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꿈만 같아서
실실 웃음이 다 나옵디다
그건 그렇고 오라버니
팔이 뼛속까지 가려운 것을 보니
이제 깁스를 풀 때가 다 되어 가는 모양이네요
그때면 홍어가 제법 삭혀져서 먹을 만할 거네요
.....


이제 밥 걱정은 없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코가 맵다
눈이 맵다
입 줄인다고
열 네 살 나던 그 해 남의 집에 던져졌던 동생의 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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