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그 이후의 어느 날 - 박남원
그대 떠나고 그 이후의 어느 날에 그랬습니다.
내 생의 모든 날들이
그날의 자세만큼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 비로소 나 이제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었습니다.
살아가는 사람의 만남이란 것이
때로는 까닯없는 기쁨이었다가도
헤어짐은 또 느닷없이 와서
억장으로 사무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일일 것이겠으나
그대 속절없이 떠나보내고 나서
남은 내가 그대보다 더 괴로워 하고
그대보다 더 가슴시렸던 거라면
세상에 나서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그것은 그나마 나의 자랑이었음을.
그리하여 그날 나는 그랬습니다.
내 생의 모든 날들이
그날의 자세만큼 늘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남을 울리기보다 내가 더 슬퍼했던 것으로
이후로도 나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습니다.
*시집. 사랑의 강, 살림터
그리운 사람 - 박남원
오늘은 불현듯
죽음이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상이 온통
냉혈의 이빨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고유한 자본의 그림자를 드리울 때마다
세상의 차가운 변두리로 밀려나
차가운 그림자에 자신의 소맷자락을 맡긴 채
오늘도 독한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키는 사람
나 또한 언젠가 한 번 그랬던 것처럼
한두 번은
아니 찬서리 친 이 세상을 살아갈 때의 도처에서
어느 산모퉁이거나 혹은 바닷가 너무나 아득한 곳에서
느닷없이 마주치게 될지도 모를
죽음이라는 향기
그 시커먼 가난한 사람들의 술친구
죽음이 그리울 만큼 이 세상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
# 박남원 시인은 1960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숭실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막차를 기다리며>, <그래도 못다 한 내 사랑의 말은>, <사랑의 강>, <캄캄한 지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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