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있는 것은 아름답다 - 앤드루 조지

마루안 2018. 2. 28. 20:59

 

 

 

요즘 죽음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손이 가는 책이 그렇다. 또 읽고 나서도 절반이 넘는 책이 독후감 없이 그냥 넘어가는데 이 분야 책은 느낌을 쓰게 만든다. 그만큼 인상에 남는다는 얘기다. 유난히 살고 싶은 요즘이다.

이 책은 얼마전에 같은 제목의 전시장을 다녀오고 나서 읽게 되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스무 명의 환자 모습을 찍은 사진에다 그들과의 인터뷰와 편지를 담은 책이다. 전시회의 연장선이다. 책은 술술 읽혀서 금방 읽는다. 그럼에도 이곳에 느낌을 적는 것은 그들의 진솔한 편지글이 인상적이어서다. <킴>이라는 중년 여성의 편지다.

무섭다.
혼자 있는 게 무섭고, 절망스럽고, 이제 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싶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화가 치민다.
죽는 게 겁이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겁난다. 어쩌면 죽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싫고, 아이들에게 짐을 안겨 주기 싫다.
그들은 나에게 얽매이지 않고 인생을 즐겨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건 사는 게 아니다. 절망 치욕스럽다. 우울하다. 원래는 삶을 사랑했다.
아이들이 너무 좋다. 그 애들은 내 전부다. 자신에게 영혼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영혼과 사랑이 다 떠나는 느낌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근심 걱정 없이 재미있고, 자유롭고,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다.
높은 산에 올라 목청껏 소리 지르고 난 다음, 호수에 다이빙해서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싶다.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나은 것이다. 말기암 환자들은 수시로 통증에 고통을 받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기에 펜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치매로 인해 기억력이 없거나 중풍으로 손이라도 마미되면 속절 없이 산송장으로 죽기를 기다린다. 스스로 마지막 편지를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한 여성은 자기가 호스피스 병동에 오게된 과정을 세세히 기억해 편지에 남겼다. 어느날 아침, 평소처럼 일어났는데 왠지 조금 피곤한 느낌에 30분 정도 더 자기로 했다가 눈을 뜨니 병실이었단다. 무려 두달 반이 지난 후였음을 알고 탄식한다.

온갖 치료와 통증을 견디며 병마와 싸웠으나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 절망한다. 평소 헬스장에 가고, 캠핑과 수영을 즐기면서 체력을 유지했고 늘 자신은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힘들단다. 이 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아주 짧은 편지도 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멋진 아내와 아들 딸이 있고 손주들도 있으니 말이다. 뭘 더 바라겠는가.

조지프 나르동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고 있지만 아직도 생에 대한 미련 때문에 살고 싶어 절규하는 편지도 있다.

왜 나야? 하고 외치며 뒹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승자가 되어 빠져나오고 싶기도 하다.
왜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걸까?
감정이란 변하는 법이다. 내 감정도 계속 변하겠지.

아벨

89세의 할머니는 인터뷰에서 회한에 젖어 말한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자꾸 꿈에 나타나요. 부모님, 형제 자매들. 제가 가족 중에 마지막으로 남았거든요. 가족 누구보다 오래 살았어요. 무척 평온해 보이는 어떤 할아버지의 인터뷰다. 더 살고 싶어요. 할 일이 많거든요. 사람들이 서로 예의바르게 대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까지 삶을 사랑한 그들은 모두 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