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에게는 용접이 필요하다 - 박순호

마루안 2018. 2. 26. 22:04

 

 

나에게는 용접이 필요하다 - 박순호


몹시도 몸서리치며 갈망하다가 쓰러진
혼절한 시간과 시간의 공간
그리움으로 비대해진 몸을 사르며
불똥으로 채워진다

그립다 못해 녹슬어버린 흉진 한의 그늘
불꽃으로 파헤쳐진 파란 물이 고이고 드디어
증발해버린 과거의 밑바닥
한 세상이 엮이는 순간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뜨겁게 달구어진 몸을 비비어
단단하게 덧붙여졌으면

누가 끊어진 나의 가슴을 지져다오
오늘만은 어느 한 켠 단단하게 덧붙여졌으면

 

*시집, 다시 신발끈을 묶고 싶다, 문학마을사

 

 

 

 

 

 

허! 그것 참 - 박순호

 

 

십이 층 정도쯤 될까

숲과 한적한 곳에 솟은 기둥들을 지나쳐

분주히 나뭇가지를 나른다

아파트 공사현장 비계 위

허! 그것 참

아파트보다 번저 둥지를 틀어 들어앉은 까치

맞은편 건물에서 혹은 십이 층 발코니에서

까치 둥지를 살피는 인부들의 하루는 조마조마하다

허! 그것 참

둥지 안에 네 개의 알이 생겨나고 머지않아 싸릿가지를 물고

공사현장을 찾아오리라

연한 껍질을 벗겨내려는 소음 속

아직은 둥근 생명

달빛에 그을린 공사현장은 적막하다

 

건물 외벽 비계가 해체되는 아침

파이프 더미에 짓이겨진 둥지

허! 그것 참

아슬아슬 비계를 타는 한 인부에게

불을 켜고 달려드는 까치의 쪽빛 깃털이 한참 뒤에야

내 손바닥에 뜨겁게 녹아내린다

새벽부터 흐렸던 하늘, 사정없이 휘젓던 인부의 연장이 떨어지고

버려진 못처럼 아무런 관심 없는 작업장

인부들이 소주잔을 돌리는 동안

참혹한 둥지 앞을 떠날 줄 모르는 까치

허! 그것 참

 

내 손바닥엔 아직 녹지 못한 몇 개의 빗물 젖은

쪽빛 깃털이 있다

 

 

 

 

*자서

 

시를 쓰면서 내 몸뚱아리는 비쩍 마르고 그 속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맑은 물 속 한 마리 은어처럼 투명하다. 그 투명한 물 속에서 시를 건져내느라 나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