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충무로에 갇히다 - 김태완

마루안 2018. 2. 26. 21:30

 

 

충무로에 갇히다 - 김태완

 

 

충무로 3가 지하철역

벽면을 채운 소음이 몸부림치는 여백

흘러간 포스터에서 지친 배우의 초상을 보는 것은

팔짝팔짝 뛰고 싶은 올챙이의 훗날처럼

아득하다는 생각.

 

종일 오가는 지하철 정해진 배차 간격처럼

지나친 반복으로 작아진 꿈, 꿈들이

만들어진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장관

막힌 환기구의 먼지로 보이는 착시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나리오가 되어

오늘도 뱅뱅뱅

외길 아닌 외길을 걷는 쓸쓸한 맹인처럼

더듬더듬 두드려 보며, 여기가

충무로가 아닐 거라는 생각.

 

 

*시집, 마른 풀잎의 뚝심, 오늘의문학사

 

 

 

 

 

 

아주 먼 곳이었으면 - 김태완

 

 

더러, 훌쩍 떠나고 싶다

 

일상이 생업처럼 지친 어느 날

 

잠깐, 잠적하는 일

어느 동네 개울가에

마구 피어난 복사꽃 살구꽃

징그런 애벌레가 쉬지 않고 가고 있는

그 곳이 어디인지

눈물겹다

 

그 곳이 어디든

이 곳이  어디든

 

낯선 시간을 감싸는 이 곳이

아주, 아주 먼 곳이었으면....

 

 

 

 

# 김태완 시인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신탄진에서 성장했다. 2000년 계간 <오늘의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추억 속의 겨울은 춥지 않다>, <마른 풀잎의 뚝심>, <왼쪽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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