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웃음인지 울음인지 - 박용하

마루안 2018. 2. 23. 22:26

 

 

웃음인지 울음인지 - 박용하


태어난 날은 알지만
죽을 날은 언제인지 모르는
알고 보면 누구나 시한부 인생
알 것도 없이 죽을 병이 삶인데
막상 삶이 1년이나 6개월짜리 꼬리표 달면
미운 털 몇이고 다음 세상 식탁에서도
생선가시 발려내며 밥 먹고 싶은 인간 몇일까
나나 내 선배나 내 후배들 만든 몸들
하나 둘 세상 뜨고 상갓집에서
별다른 느낌도 없이 술 먹는다
직장암 수술 받기 위해 어머니 입원한
원자력 병원 엘리베이터에 나보다 한창 새파란
이마 뒤로 머리카락 하나 없는 절대 소녀,
빛이라도 마주 튈라 그저 눈 허공에 깔다
콩나물국밥집에서 특별한 느낌도 없이 아침 먹는다


*시집, 견자, 열림원


 




성욕 - 박용하

1

수줍음과 난폭함이
늘 양날의 칼처럼 맞대고 있다
평생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며
귀하다고도 천하다고도 할 수 없는
우리들 우글거리는 모든 악의 원천!
지상이고 천상인 그대는
노래 없는 얼굴로 나타나
늘 정체 모를 시간과 함께
삶의 의젓한 얼굴을 급습하는 구려

2

말은 통하는데 몸은 안 통한다
비애다
말은 안 통하는데 몸은 통한다
그것도 비애다
말도 안 통하고 몸도 안 통한다
비애도 그런 비애가 없다

 




*시집을 펴내며

너는 고통하는 인간이다.
네 가녀린 두뇌는 네 뜨겁고 장엄한 심장 위에서
해바라기처럼 한숨 짓는다.
네 한숨은 돌 매단 시체 자루처럼
지금쯤 강바닥에 닿았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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