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일에 - 강영환

혼자 하는 일에 - 강영환

나는 점점 익숙해져 간다 늘

걷고, 밥 먹고, 잠드는 일들 그리고

꼼짝 않는 울 밖 젊은 은행나무를 보며

차 한 잔 마시는 일에 몰입될 줄 안다

오지 않는 편지에 답하는 일도

통하지 않는 전화를 거는 일도

누구 조언 없이 잘 참아 낸다

새가 날아와 노래해 주지 않을 때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같은

돋지 않은 무수 무수한 잡풀씨앗 앞에서

남는 시간을 서성거리지 않아도 된다

'안녕하냐?' 묻는 숱한 대자보에도

누구도 말리려 들지 않는 직립보행으로

뻐근한 목덜미 숙이지 않고 걷는 일에

떨어뜨릴 잎 하나 없는 자유를 가졌다

더 짙고 깊은 잠에 익숙해져 가거나

정한 시각에 잠들지 않아도 된다

*시집, 집산 푸른 잿빛, 책펴냄열린시

은퇴 후 - 강영환

주체할 수 없는 잠이 시간을 죽였으면 좋겠다

마구 퍼주어도 말없음표는 문 밖으로 넘쳐나고

누구도 주워가지 않는 시계바늘이 끊어졌다

빈손이 무겁다는 이유를 처음 알았다

무게로 눌러 앉은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놀았다

쉽게 논다는 무료한 칼날을 손에 쥐어 다오

낡은 잠을 절단 내고 말리라 남는 시간에

쉽게 흔들리는 풀잎을 잘라 허공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누군가 걸려들기만을 겨냥하여 이 방 저 방에 그물을 숨겨 놓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돌을 가는 날카로운 시간이 있어

나를 겨냥하는 눈빛이 유리창에 부딪혀 불꽃이 탄다

죽여도 남는 시간을 네게 주어 날게 하랴 손자야

옆구리에 간지럼 먹이고 날아가는 네 웃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