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알면 멀어진다 - 이희중

마루안 2018. 2. 14. 20:28



알면 멀어진다 - 이희중



우리는 자주 다 알지 못한 채 마음을 내어준다.
다 알고서도 사랑할 수 있을까.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 노래를 좋아하게 되엇었을 때, 이를테면 버스 안에서 한두 소절을 처음 듣고 어떤 노래를 기억하게 되었을 때,
악기의 배합이나 리듬이나 곡조만 아니라 노랫말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 노래의 가장 강력한 대목을 듣고 홀딱 빠졌을 때,
우리는 그 노래의 남은 전부를 마음대로 상상하고 마음대로 좋아한다. 자신이 좋아하도록 손수 만들고 상상하고 좋아한다.

 
잠깐 듣고 만 노래의 제목과 가수를 수소문하여 마침내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오기를 기다려 녹음하거나,
음반이나 음원을 구해 거듭 들으며, 가사를 받아 적은 후 따라 부르며 노래를 다 알고 나면 이미 그 노래는 그전과 같지 않다.

 
우리는 자주, 다 알고는 멀리한다.
다 알고서도 싫증내지 않을 수 있을까.


노래는 우리가 다 부를 수 있기 전,
노랫말과 곡조를 다 알기 전에 가장 아름답다.
사람도 그 속을 다 알기 전, 그 몸을 다 알기 전이 가장 아름답다.

 


*시집, 나는 나를 간질일 수 없다, 문학동네








상가(喪家)에서 - 이희중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오래오래 살아서
내가 그들 곁에 있다는 사실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고
그보다 더 오래오래 살아서
지긋지긋한 일이 될 때까지
견뎌야 한다
그러고도 더 오래오래 살아서
내게도 그들이 지긋지긋한 존재가 될 때까지
더 견뎌야 한다
그래야 순순히 작별할 수 있다


유족과 조객들이
영안실에서 밤새 웃고 떠들며 논다
고인도 그 사이에 언뜻언뜻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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