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 인생의 브레이크 - 하상만

마루안 2018. 2. 7. 21:58



내 인생의 브레이크 - 하상만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운수회사에 찾아갔어
25톤 트럭 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왔다 갔다 하면
제법 돈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는 몇이냐
결혼은 했느냐
아이는 있느냐
사장님의 질문에 척척 대답하고 나니
25톤 트럭은 영 못 몰 거라네
마누라 있고 애도 있고 해서 버는 김에
확 벌어야겠는데
어째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거저 180은 밟아줘야 수지가 맞는데
조심성이 생겨서 그럴 수야 있겠는가
100만 넘어도 발바닥이 올라가니
처자식이 브레이크야, 브레이크
이러더구먼
지금은 5톤 트럭 몰고
가까운 데나 조심조심 왔다 갔다
하고 있지



*하상만 시집, 간장, 실천문학사








담장 - 하상만



가진 게 없을 땐 그냥 묻어가는 것이 좋다
백합 속에 섞여서 백합처럼 살아가는 난초처럼
꿀벌이 너를 알아볼 때까지 꽃가루를 묻히면 된다
난초의 속임수가 정당한 것은
난초에게 꿀이 없기 때문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스스로 죽을 수 없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시들어 죽어도 백합 옆이라면 백합처럼 죽는다고
아버지는 생각한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반 분양아파트의 아이들과
영구 임대아파트의 아이들이 다른 학교를 다니게 되었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 몇 동은 다행히 좋은 학군에 편입 되었다
너는 백합처럼 그 학교를 다니고
더 이상 검은 하늘과 썩은 나무로 두꺼워진 그림은 그리지 마라
네가 일반 분양아파트에 산다고 말하지 않으면 너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너는 말없이 홀연히 날아온 씨앗이라 생각하고
백합 사이에 끼어 바람이 불면 같이 한들거리면 된다
친구들은 너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한다
하굣길엔 함께 일반 분양아파트로 몰려갔다가
친구들이 집으로 들어간 사이 너는 담을 하나 넘으면 된다
가정환경조사서엔 그냥 애매한 주소를 적어 넣어라
그리고 담임이 물어도 학비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은 하지 마라
학원엔 꼭 다녀라
아버지가 너 기죽지 않게 돈 벌어오마





# 가슴이 서늘해지는 시다. 얼마전에 자기 동네에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선다니까 엄청 반대를 했었다. 자기 집값 떨어진다고,, 또 얼마전에는 장애인 학교를 세운다니까 그 동네 주민들 결사 반대를 했었다. 동네 집값 떨어진다고,, 집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그렇게 할까. 베풀 여력도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있는 법, 아프게 박히는 좋은 시 제대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