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픈 것일수록 환하다 - 장시우

마루안 2018. 2. 8. 19:27



슬픈 것일수록 환하다 - 장시우



더없이 환한 저녁이 오는 시간
기쁨도 슬픔도 없이
더디 오는 것들이라니
이별도 더는 아프지 않다
무딘 위로의 말 하나 썰어
저녁으로 삼자
하루가 흔적 없이 사라졌단 말일랑 하지 말자
아직은 밤이 있으니
비록 어둡고 고단해도
불빛으로 오는 신기루도 있다
그대 삼킨 꿈이 오늘의 에너지
내일도 삼킬 꿈이 남았으니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이상하다
슬픈 것일수록 더 환하다



*시집, 벙어리 여가수, 문학의전당








어떤, 위로 - 장시우



찬바람이 원주천변을 종횡무진 휩쓸고 간다
누군가가 버리고 간 자동차가
온몸으로 바람에 맞서고 있다
누가 떼어 갔는지 전조등도 핸들도 남아 있지 않다
기다림이 길어 외로웠던 몸
깨진 유리창으로 바람 몇을 들인다
거친 바람 드나들어 뼈가 시린 밤
그 바람을 다 안느라
신음 소리가 깊다
조바심이 앞서 달리는
젊은 바람은 전력질주로 강으로 뛰어든다
불빛을 피해 잠을 청하던 강물이 잠을 깬다
물 위에 그라피티 중인 불빛
속도를 올리라 보챈다
그러나 요지부동!
더는 봐줄 것이 없다는 듯
불빛은 문을 꽝 닫고 떠난다
시간에 삭아가는 녹슨 문이
흐느끼는 소리


백만 년을 걸어와
천변을 떠돌던 달빛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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