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유년의 하늘 - 이상원

마루안 2018. 2. 3. 19:33

 

 

유년의 하늘 - 이상원

 

 

유년의 하늘을

새 한마리 가고 있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따금씩 벽돌담을 흔드는

아이들 소리거나

햇살이 튀는 솔바람소리라면

혹 모르겠지만

한번도 젖지 못한 내 목소리의 눈금으로

굳은 그 날개를 퍼득이게 하기는

어림없는 일이다.

 

정갈한 피 한방울로 거기까지 닿아서

굳은 목줄 풀리고 눈빛도 풀고

초록빛 뚝뚝 듣는 노래도 풀려서

한밤중 가문 뜨락에 비처럼 내리기는

천년 혹은 더 먼 후에도 어림없는 일이다.

 

유년의 하늘을

박제된 새 한마리 가고 있다.

눈 감으면 취중엔듯

지상의 동백잎이 한잎

반짝하고 빛난다.

 

 

*시집, 지상의 한점 풀잎, 도서출판 경남

 

 

 

 

 

 

정월 대보름 - 이상원

 

 

내 어린 날 잘 타던 불꽃, 지금도 타던가.

 

마을 뒤 숲에서 왕대 찍어 상대 삼고 태깔 고운 짚단 위에 앞뒷산 생솔 얹어 쉬이 타지 말라고 우물물 흩뿌리면, 누이들은 새하얀 동정닢을 주렁주렁 달았다. 한마당 꽹과리 막걸리로 어울고 달 뜬다 달이 뜬다 징소리 높이 울면, 풍년 비는 남정네나 동자(童子) 비는 아낙네 맘, 달집에 든 달이 불꽃으로 거두었다.

재마저 사위도록 춤겨운 어깨 위에 밤이 깊을수록 밤이 깊을수록 달빛 더욱 밝아오고, 하나씩 불씨 든 아이들은 내달아, 달집에 타던 불이 들판에 형형했다.

 

논두렁 논두렁마다 이슥토록 타던 불꽃

볼 시린 겨울 들에 불줄로 따습던 꿈,

보름달이 휘청이도록 함성 높던 그 아이들 자라

날저문 포장마차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지금도 그 불꽃 그 때처럼 잘 탄다던가.

 

 

 

 

# 이상원 시인은 1953년 경남 고성 출생으로 199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와 <문학과의식>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상의 한 점 풀잎>, <낙토를 꿈꾸며>, <지겨운 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