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두 번째 이별 - 심재휘

마루안 2018. 2. 2. 22:48



두 번째 이별 - 심재휘
-북쪽마을에서의 일 년



그대를 남겨놓고 북쪽마을로 떠나올 때
나는 처음 이별을 알았네
돌아보지 않아도 그 이별
등 뒤에서 작아지며 오래 서 있었네


그리고 북쪽마을에서는
첫 이별의 벌판에 몇 차례 눈 폭풍이 찾아오고
첫 이별의 기차들이 저녁을 지나 멀리 떠나가고
밤마다 첫 이별의 별들은 자작나무 숲 속에서 어두워졌네


여름이 오자 당신은 한 철 같이 지내자고
이별 가득한 가방 하나를 들고 나를 찾아와
오늘은 내 곁을 떠나가고 있네 그리하여
나는 두 번째 이별도 알아버렸네


나는 알아버렸네 우리가
한평생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멀어지는 이별 후의 다시 다가오는 이별뿐이라는 걸
그리하여 당신과 또 헤어지는 어느 날
주머니 속에 한 푼의 이별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네
이별과도 이별하는 것이네



*시집, 중국인 맹인 안마사, 문예중앙








청춘 - 심재휘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
팔순 노인이 전기장판에 누워 몸을 데우고 있다
턱밑까지 담요를 끌어올리고 낮잠에 들었다


매일 조금씩 새어나가던 빛을
한 켜 마저 잃고
달 하나가 빈손으로
하늘의 눈발을 발자국 희미하게 걷고 있는
오늘은 섣달그믐


어느 여름 붉은 꽃에 마음을 덴 듯
흉이 진 그의 숨소리가 그렁그렁하다
끝내 창문을 넘어가지 못한다
창밖에는 여전히 폭설인데
바깥에서 누군가
얼어버린 자동차 시동을 애써 거는 소리
아득하고 아득하다





# 심재휘 시인은 1963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