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중년의 번식 - 문신

마루안 2018. 1. 30. 21:59



중년의 번식 - 문신



어깨가 아프다 하는데 의사는 경추가 문제라고 하였다
경추와 어깨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나
불륜처럼 어떤 그리움이 자꾸만 남의 거처를 기웃거리나
무적(霧笛)으로 울다 깬 어둠은 고작 눈썹 아래 매달린 그늘의 무게 뿐인데
어째서 경추의 슬픔은 곡비처럼 어깨에 가서 우는가
어째서 연륜은 헐거워진 메아리 되어 신경의 능선을 질주하는가
온열치료기를 경추와 어깨에 통신선처럼 매설하고 누워 울음의 체세포분열을 헤아리다가
불현듯 생활의 갈피는 사무쳐서 갸릉갸릉 고주파로 울어보았다
울음에도 나이테가 있어 울음이 울음을 거느려 울음켜를 쌓아가는 것인가
경추에서 어깨까지 울음점을 깊어주던 노년의 물리치료사가 말하기를
중년은 유성생식과 무성생식 사이에서 어깨와 경추 사이에서 울음으로 번식한다는데


먼 바다에 드리웠던 주낙 부표를 도둑맞은 것처럼 어깨에 손을 얹고 빈 구럭으로 우는 중년이 있다 어제보다 많이 있다



*문신 시집, 곁을 주는 일, 모악








마흔 살 당신에게 - 문신



어느 숲길에서 다섯 장의 꽃잎과 진보라색 꽃술 그리고 잎은 두 장 줄기는 당신의 허리처럼 낭창하지도 말고 뻣세지도 않게 키는 다섯 치면 충분한 그런 풀꽃과 마주하는 날이 온다면 이제 마흔이 되고 마침내는 많은 날들을 개울물처럼 흘려보내게 될 당신에게 비로소 대장암 말기라는 사실을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고백해야만 한다


고백은 증여의 한 방식이므로


당신은 고백을 위탁해서는 안 되고 당신의 등기부에 등재해두어야 한다 그 고백은 남은 삶만큼만 당신도 지상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다는 희미한 믿음 같은 것이어서 꽃이 시들어가듯 조금씩 희미해져가다가 사실상 말기는 벼락처럼 끝나버릴 것이다


어느 숲길에서 길을 잃더라도 구름 그림자처럼 두리번거리지 말 것!


그 몇 년 후.....
오로지 묵묵함으로 당신은 살아갈 테고 나는 한 장의 꽃잎이 찢어진 채로 아주 연약해져 있을 것이다





# 작년 말부터 이 시집을 붙들고 있다. 읽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찾아오는 중년의 애환이 쏟아져 나온다. 어?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어? 있었는데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나는 본격적인 중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