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악연 - 유영금

마루안 2018. 1. 27. 21:06



악연 - 유영금



염통이 터진 사랑아
등기를 말소 한다


기름통에 처박힌 서른아홉,
쑥대밭을 굴러 고물상을 지나
병든 걸인의 의자가 된다
걸인이 버린 담배불에 닿아 재가 된다


하루 백 마일씩 도망치는
빌어먹을 사랑아, 염병처럼 떠나거라



*시집, 봄날 불지르다, 문학세계사








손목에 관한, 2 - 유영금



오른쪽 손목을 자른 내가

왼손으로 밥숟갈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내가

상처의 똥구멍을 꿰매고 또 꿰매는 내가

빈방의 한 톨 마른 밥풀인 내가

문풍지를 뚫고 새어 들어오는

옆집을 엿듣고 있다

바람에 묻어 온 꽁치 굽는

땅거미에 감겨 온 된장찌개 바글거리는

뚝배기 속 달그락 자지러지는 숟가락 웃음소리들

인생 서른아홉 장을 몽땅 날린 투전판을 엿듣다니

왼손마저 자르려는가

고물상에 내다 팔아버리고픈 내가

왼손을 아끼는 내가

도끼도 버린 내가

염병할 내가


엿들은 죄로

밥숟가락을 아궁이에 처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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