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 나이쯤의 편애 - 이수익

마루안 2018. 1. 20. 20:45



이 나이쯤의 편애 - 이수익



내 마음 속에
누런 구렁이 한 마리 살고 있네.
휘번뜩이며 시퍼런 갈구의 뿌리
어디 몸 둘 곳 몰라 서성이고 있네.
입을 벌리면 두 편으로 갈라터진 혓바닥으로부터
서늘한 냉기와 긴 엄습함이 불타오를 듯
숨죽이고 있는 이 편애의 고집
나는 사랑하리.


최후의 쇠사슬에
몸을 가득 묶고서
어디 갈 곳 없는가, 숨찬 서성거림으로
기다랗게 또 한번 목을 늘려서 바라보는


이 나이쯤의
견고한 결핍, 또는 위태로운 사랑.



*시집, 천년의 강, 서정시학








새로운 놀음 - 이수익



그는
제국의 몰락을 기다리면서

같은 꿈을 꾸어왔다
그렇게 불행한 땅을 함께 딛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차마
미리 알았으므로
비극적 삶을 향한 그의 놀음은 진지하고
언제나 새롭게 다가왔다


저격(狙擊)의 순간을 기다리는 불꽃이 이글거렸다, 숨어 있는
폭발음처럼, 뛰어드는 적을 향한 그의 두 주먹은
불끈
쥐어졌다


마침내- 라고 부를 최후의 순간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도, 그와는 다른 세상을 노리는 이들도 함께 파멸하는
흐리멍덩한 세상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는 오늘도 늙어간다, 참으로 오래된 날이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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