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검고 깊은 것들의 일면 - 이응준

마루안 2018. 1. 18. 23:11



검고 깊은 것들의 일면 - 이응준



광야를 헤매다가 신을 만났다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끌어안았더니 무쇠 난로 같았노라고
신을 회고했다.


그는 나의 친구가 아니다.
나의 적도 아니다.
그는 광야를 헤매다가 신을 만난 사람일 뿐이다.


나는 알고 있다.


몰래 슬픈 표정이 맺힐 때 언뜻
덫에서 빠져나오다 발이 잘린 짐승 같아 보이는
그 사람.


그는 눈보라 치는 광야에서
뜨거운 신을 꼭 끌어안고
오래 울었던 사람이다.



*이응준 시집, 애인, 민음사








투병기 - 이응준



너를 알던 사람들이 모두 잊겠지만
너와
너에 관한 전부를 잊어버리겠지만


훗날 누군가는 너만이 알던 그에게서
너를 떠올릴 거야.
그리고 그건 아주 괴로운 버릇이 될 거야.


소년아. 어른이 되더라도
오늘이 너에게
오늘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아프면 벽 틈 사이로
바다가 보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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