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선을 긋다 - 최대희

마루안 2018. 1. 18. 22:34



선을 긋다 - 최대희



어느새 돋보기를 고를 때가 되었다
신문지를 들고 곰곰 생각하니
돋보기 위로 내가 저지른 실수가 확대되었다


사각으로 분할할까
동그랗게 분할할까
날아가는 꿈을 꾸며 나비 모양으로 할까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얼굴에 선을 그으며
분할해 나갔다


시력 2.0에서 0.2로 변화하는 동안
나의 머리카락은 갈대밭을 걷고
얼굴은 극사실주의 화가처럼 세밀하게
주름을 그려 가는데
눈이 자꾸 흐린 유리창이 된다


우린 자주 영역 다툼을 한다
어린 시절 책상을 반으로 선을 긋듯
내 구역과 당신의 구역
여자와 남자의 구역


집 안과 밖의 구역을 나누려고 애쓰지만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있다


돋보기를 걸치니 내가 저지른 실수
영역 다툼이 아닌
타인 인정하기가 보이는 순간
진동하는 핸드폰처럼 떨렸다



*최대희 시집, 선물, 연인M&B








감빛 - 최대희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마다 색깔이 다른 것은
아픔의 소화 흡수 방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한때 열두 식구의 목소리로 집안 공기가
장터 같았던 시절을 지나 빈집을 지키는
감나무는 가지에 저녁 해를 걸어놓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추석이 며칠 지나고, 빈집이 궁금하여
찾은 고향집
까치가 물어다 준 자식들의 안부를
감잎 갈피마다 보여 주는 나무 밑동이
아버지 발바닥처럼 갈라져 있다


허공을 덮던 감나무는 가을이 되자
가지마다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있다
내 그리움을 익히고 익혀
모두 너에게 줄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감빛으로 물들이는 나무
그 말을 참말인 듯 믿으며


첫눈이 홍시를 꼬드겨 투신하기 전에
나무의 외로움을 덜어 주어야 한다고
감을 따고 또 따는 염치없는 것들의
손이 분주하다


견딘다는 건
서늘한 외로움을 다독이며 지나가는 것이다





#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인의 시를 골똘하게 읽는다. 글쓴이의 삶에 대한 진정성이 전해지는 싯구에 오래 눈길이 간다. 시평을 하는 족속들은 온갖 문학적 잣대를 갖다 대며 작품성을 논하지만 정작 독자의 공감을 얻지는 못한다. 좋은 시란 쉽게 다가오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 법, 비평에 무슨 수학 공식처럼 미사여구가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