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동갑 - 윤제림

마루안 2018. 1. 16. 21:11



동갑 - 윤제림



몹쓸 병이 돌아서, 생매장


돼지들이 떠난
축사 앞에서 주인이 눈물을 훔친다
조금 있으면 내다팔 것들인데,
다 컸는데....


돼지들은 내개 동갑일 것이다


뉴스 끝에는 내 동갑도 나왔다,
고시원 옥상에서 몸을 던진 사람
흑룡강에서 온 사람
나이를 짚어보니 돼지띠.
세상에 내다팔 것이 더는 없었던 모양이다


잘 가라, 동갑네야
복 있으라,
사해(四海)의 돼지들아!



*시집, 새의 얼굴, 문학동네








쉰 - 윤제림



하루는 꽃그늘 아래서
함께 울었지


하루는 그늘도 없는 벚나무 밑에서
혼자 울었지


며칠 울다 고개를 드니
내 나이 쉰이네


어디 계신가..... 당신도
반백일 테지?





# 오십대는 참 애매한 나이다. 젊은 날의 뜨거움을 조용히 돌아보기에도 그렇다고 노년의 회한을 탄식하며 공감하기에도 애매하다. 사십대는 그런대로 재기를 꿈꿀 수 있지만 오십대는 그것마저도 애매하다. 쓸모없다는 말에 발끈할 수는 있어도 쓸모있음을 증명하기에도 애매하다. 오십대 이래저래 애매한 나이다. 내가 그걸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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