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세월 속에* - 고운기
섣달 늦은 밤, 눈이 내리고 가로등 비추는 길
새하얀 눈 위에 담뱃재
바둑이와 같이 간
어느 남자가 아니 어느 여자가
무슨 결심을 하던 중이었을까
아무 일 없이 해가 바뀌더니 강이 얼었다
유람선이 멈췄다
물길 오십 리
얼음을 따라 강변도로가
저도 얼어 눈물 보이는 아침
잡혀간 친구.... 이런 말 입에 올릴 일 더 없으리라 믿었는데
그 집 통장에 돈 넣을 일 더 없으리라 믿었는데
눈이 녹을 때
강이 풀릴 때
청청한 새벽이 올 때까지.... 이런 옛 맹세가 속절없다.
*최숙자가 부른 <영산강 처녀>에서.
*고운기 시집, 구름의 이동 속도, 문예중앙
흐미한 등불 밑에* - 고운기
살아가는 일의 곡절이 있어
때로 잠 못 이루는 밤과
때로 느꺼이 잠드는 밤이 번갈아 찾아왔었다
자주는 오지 마라, 곡절이여
깊이 사랑하지 못한 세상과 사람
미안하단 말일랑 하지 말라고
고맙지 않느냐고 가슴 펼 일 좀 하라고
떠난 사람은 내 귓가에 그렇게 남아 있다
산새가 털고 간 나뭇가지 끝에서 눈이 날린다
*황금심이 부른 <외로운 가로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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