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구름장 여관 - 김신용

마루안 2018. 1. 9. 22:59



름장 여관 - 김신용

 


나의 생은 여관의 삶이었다
나는 수많은 여관을 거쳐 이 길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저 구름장 여관으로 가는 길은 모른다
내가 마지막으로 머물러야 할 저 여관,
그곳에서의 하룻밤으로 내가 무화(無化)되어야 할 곳!
나는 떠도는 물방울처럼 살아왔다
내 육체의 표면장력은 그렇게 떠도는 물방울끼리 만나
강을 이루는 것이었다. 강이 되어 흘러가
장엄한 바다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방울이여, 허공에서 떨어져
사람 사는 곳의 지붕에 내렸다가, 홈통의 물받이에 모여
찌든 삶을 씻는 걸레의 물 한 방울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바다는, 언제나 우리의 꿈이었다
그러나 나는 풀잎의 낯을 씻는 물 한 방울 되지 못했다
풀의 집의 초라한 식탁을 켜는 촛불 하나 되지 못했다
그냥 하수구를 통해 시궁창을 흘러왔다
그래도 바다로 가기 위해 이빨은 자라났고, 야행성의 눈은 반짝였다.
서로 증오하며 피비린내를 풍겨야 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 빈 벌판에
혼자 서 있다. 뒤돌아보면 내가 관통해 왔던 도시의 길 위에서
수많은 여관의 불빛들이 반짝인다. 그 불빛은
쥐덫처럼 아름답다. 맛있는 생선 대가리를 매달고 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생쥐와 시궁쥐의 다른 점은 물어뜯는 이빨에 있다
피맛에 잘 깃들여진 그 이빨은 안다. 물방울의 길을.
어찌할 수 없는 표면장력의 힘으로 내가 떠나야 할 길을.

그 구름장 여관에는 이불이 없고 따뜻한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시멘트 침대 하나만 놓여 있을 것이다
그 소실점을 향해 이제 나는 수증기가 되려한다
그러나 나는 저 구름장 여관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그 구름장 여관에서 다시 물방울끼리 모여, 사람사 는 곳의 마당 위로 내리고 싶은데
 ....



*시선집, 부빈다는 것, 천년의시작








내 뼈의 가지에 寒苦鳥 - 김신용



망초꽃 핀 들길을 걷는다
바람 따라 아픔의 눈망울이 가득 흔들린다
사슴 농원의 철망 안에는 뿔 잘린 회한들이 길게 누워 있다
변명을 피우듯이 한꺼번에 깨어난 담장의 개나리들은
失足이듯, 떨어져 내려 무심한 내 발에 밟히고 있다
내게도 한때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이 있었던가?
그래, 사람에겐 저마다 살고 싶은 生이 있으리라
그 꿈을 찾아, 무수한 길을 걸어 나는 이 길 위에 서 있다
잡풀 우거진 포도밭을 지난다
포도야 열리든 말든 땅값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는 포도밭,
말라, 온몸 비틀어지는 포도나무처럼 걷고 있다
고뇌의 가지를 비틀어 올리는 뿌리, 돌보는 이 없어도
넝쿨에는 미숙아 같은, 영양실조의 포도알들이 꿈처럼 그렁 맺혀 있다
봄볕은, 그 빈혈의 가지에 수혈의 주사기를 꽂고 있지만
벌거벗은 벌판이 자꾸만 아스팔트처럼 자라나
독풀들, 그 흡혈의 이빨이 더 무성하다
저녁 어스름이 벌판 위에 제초제처럼 내리고
희망은, 길의 끝에 무덤을 만든다
모든 길의 끝에는 무덤이 있다
지금 혼자 걷는 내 산책길의 끝, 무덤가에 서면
땅거미 속으로 협궤 열차는 또 망초꽃 가득 싣고 흘러가고
곡괭이로 시를 쓸 수 있는 세계를 향해 나는 걷고 있는가?
내 뼈의 가지에는 寒苦鳥가 울고 있다





# 시인은 빈민가 출신으로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재능이 다양해서 소설도 쓴다. 시인은 <한고조>라는 새가 화두이지 싶다. 그가 쓴 소설 <고백>에 나오는 새이기도 하다. 또 시집 <바자울에 기대다>에도 한고조에 관한 몇 편의 시가 실렸다. 시 일부를 인용하면 <한고조라는 이름의 새가 있습니다. 눈 덮인 히밀라야 산속에 살면서도 집을 짓지 않죠. 밤이 되면 추운 나뭇가지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몸 웅크리고 떨며, 날이 밝으면 꼭 집을 지어야지, 후회의 피울음을 울고 있다가도,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햇볕 따뜻한 가지에 앉아 또 노래만 부르고 있는 새죠.> 한고조, 이름도 나처럼 슬픈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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