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이에는 테가 있다 - 윤관영

마루안 2018. 1. 10. 18:55



나이에는 테가 있다 - 윤관영



무맛을 아는 나이가 있다
아려도 생무가 좋은 나이
무 냄새가 좋은 나이


조림 무를 넘어, 무말랭이를 넘어
무청 김치맛을 아는 나이가 있다


장다리꽃 게을리 흔들리는
나비춤 지나,
양분은 꽃대에게 준,
말라붙은 물기 지나


무맛이 배보다 좋다는 그 거짓말을 이해하는 나이가 있다
무라 이름한 그 물통, 그 자리
맨대가리 잘린 무가 내어놓은
무청이 시래기가 되는 그 자리


무도 제대로 여문 것은 제 몸이 터진다
무청 잡힌 알무에 가슴패기를 맞아 吐血하고픈
무 속 같은 몸이고픈 저물녘이 있었다


나이 맛을 아는 나이가 있다
흙내가 좋은, 제물에
흙 맛을 아는 나이가 있다
바람 맛을 아는 무청 같은



*시집, 오후 세 시의 주방 편지, 시로여는세상








사내 - 윤관영



사내는 고독했다 예의적으로
고독했다


맞대면할 틈이 없었으므로 심정적으로 고독했다 잠이 좋은 육체는 세입자 쫓아내듯 고독을 몰아냈다 한가와 권태를 모르는 지독한 사내였다


가로수가 모든 풍우를, 매연을 고스란히 받듯 사내는 움직일 줄 몰랐다 모든 고독이 직방으로 왔다 고독은 월세처럼 왔다 고독을 대면할 시공이 없는 자의 절망적 고독,


그 절망 앞에선 고독도 피해갔다 소란의 중심에 있는 사내, 고독마저 친절하게 만들었다 간장게장 같은 가슴에,


붉은 손등의 사내, 고단한 몸에는 고독이 들지 않았다


죽음을 살면 고독은 틈이 없엇다 고독이 잠잠하자 낭만도 잠잠해졌다, 뜬금없이


사내는 칼을 갈곤 했다 게장 가슴을 열듯이






# 윤관영 시인은 1961년 충북 보은 출생으로  1994년 <윤상원문학상>으로 등단해서 1996년 <문학과사회> 가을호로 작품 활동을 시작헸다. 2008년 첫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으로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받았다. <오후 세 시의 주방 편지>는 그의 두 번째 시집이다. 글발축구단 열혈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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