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저 풍찬노숙의 나날 - 고재종

마루안 2018. 1. 9. 22:22



저 풍찬노숙의 나날 - 고재종



길가의 오락기에서 아무리 두들겨 대도
한사코 튀어나오는 두더지 대가리처럼
한사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퇴행성 고독의 습관 같은 게 그를 홀로 세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우느냐고 하지 말아라
울 수라도 있다면 왜 기도하겠느냐고
반문하는 데에도 지쳐 있다


더 이상 참을 만한 게 없는 생이
나를 참을 수 없게 한다던 랭보여
중대장의 명령 하나에 인분을 핥은 병사들의
굴욕 같은 생도 이미 참았으니


다만 오그라지고 우그러지고
말라비틀어진 과일 도사리 같은 것으로
그를 아무도 눈여기지 않는 곳에 홀로 세우는
저주받은 고독의 습관 같은 거라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저 풍찬노숙의 나날을 누구에게 물을까



*고재종 시집, 꽃의 권력, 문학수첩








한 알콜중독자를 위하여 - 고재종



나이 마흔도 중반을 넘긴 그는, 아직도
술만 먹으면 아무 데나 코를 박고 운다.
그의 어머니, 연년이 들어서는 아이가 무서워
지풀자리에 낳은 아홉째인 그를 그만
엎어 버렸다 살렸던 내력 탓일까.
술만 먹으면,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그렇게 또 고래고래 노래하는 것이
태어난 것 자체가 모욕이어서일까.
한때 화장실 청소차까지 몰았던 그,
그래서 자신이 그곳의 버러지 같다고 느낄 때와
버러지 같은 세상에서 더는 못살겠다고 느낄 때를
분명코 일별할 줄 아는 그, 그런 그가
나이 마흔에야 정을 주게 된 여자가
결박당한 자신 앞에서 짓이겨지고 죽어 간
모욕과 상처, 그 몹쓸 일까지 안게 되었음에랴.
그런 그가 버러지 같은 세상을
깡그리 청소해 버린다는 신보다는
주정뱅이와 바보와 어린아이를 사랑한다는
신 쪽에 서서 취생몽사의 길을 꿈꾼대서 잘못이랴.
알콜중독자만 되어도 자살하지 않을 수 있다는데
슬픈 그에겐 취하는 길도 닫힌 채
철창 차에 실려 정신병동으로 떠나는 오늘
누가 그를 인간에 포함시켰는가, 차마

지 않을 수 없다면 이 또한 지옥 아닌가.





# 나는 왜 이런 시에 대책없이 눈길이 갈까. 칙칙하고 우울하고 서늘한 싯구에서 희망의 역설을 감지한다. 저주 받은 고독의 습관이 아니래도 괜찮다. 다만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는가에 가슴이 뜨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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