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인연에 대하여 - 조항록

마루안 2018. 1. 9. 22:35



인연에 대하여 - 조항록



한겨울의 쇠난간 같다
물렁한 살들이
시멘트처럼 굳게 움켜잡은
인연의 끈들
부서져야 뽑히거나
안국동과 종로에서
우연히 만나
언제 술 한잔 건성으로 기약하거나
잡으면 손이 시리다
구구절절 마음이 어둡다
그런 줄 알면서도
어차피 세월 가파라질수록
의지할 수밖에 없는
허황한 외로움


저기 저 쇠난간을 부여잡고
가쁜 숨으로 계단을 오르는
노인의 야윈 손이
쓸쓸히 언다



*시집, 지나가나 슬픔, 천년의시작








지나가나 슬픔 - 조항록



무심한 건 내 진심이 아니다
너의 간절한 눈빛을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나는 소심한 사람이다
버릴 것 버리지 못하고
얻는 게 있으려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라는
현실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다
그래 그렇게 가버려라
욕을 해도 침을 뱉어도 좋다
나 또한 네가 그리울 때 있겠지만
봄비 내리는 창 밖에 봄날이 지나가듯
사랑할 때 그렇게 가버려라
나는 이미 천 명의 아내와
만 명의 자식을 거느린 사내
도저히 너의 눈빛을 안아줄 수가 없다
너와 함께 까마득한 곳으로
함께 사라져버릴 수가 없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지 않은가





# 시집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천년의시작에서 나온 시집에는 좋은 시인이 많다. 그 시집 중의 하나가 조항록 시집이다. 눈으로 읽어 울림이 있는 시는 낭송하기에도 좋다. 흥얼거리듯 나지막이 소리 내어 읽어본다. 이런 시와의 인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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