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섣달그믐 - 허림

마루안 2017. 12. 31. 22:23

 

 

섣달그믐 - 허림


안방 가득 속청태 쏟아놓고 콩을 고르는데
뜬금없이 어머이가 묻는다

얘야, 니가 올해 몇이냐

몇이냐고 묻는 사이

한 해가 갔다


*시집, 말 주머니, 북인

 

 

 

 

 

 

절 - 허림


아들 딸 구별 않고
애 들어스는 대로 아홉을 낳았다는 문경댁
열아훕에 시집 와 잠자리에 들어 낳기 시작했다는데
큰애가 예순 둘이니
더러는 두 살 터울이거나
연년생의 새끼들인데
정말 똥강아지처럼 싸우고 볶고 지지고 난리치다가도
밥상머리에선 죽기 살기로 들이밀고
눈물 찔찔 흘리며 학교 보내달라는 애를
눈 꽉 감고 알아서 벌어먹으라고
지게작대기로 후둘궈 내쳤다는데
한 녀석은 서울서 내려간다 하고
한 녀석은 대전서 출발해 충주 사는 즈 누이랑 같이 간다 하고
한 녀석은 즈 오래비랑 울산서 고속도로에 올렸다 하며
눈물덩이 절름발이 녀석은 포천서 막 떠났다는데

다 왔다



 

# 허림 시인 강원도 홍천 출생으로 강릉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1992년 <심상>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 <노을강에서 재즈를 듣다>, <울퉁불퉁한 말>, <이끼, 푸른 문장을 읽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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