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뼈를 보았다 - 고철

마루안 2017. 12. 29. 20:50



뼈를 보았다 - 고철



단추가 떨어졌다
분명히 명분이었던 한때의 것이 떨어졌다
견고했었다
헐거워도 풀리지 않았던
매달려야 비로소 숨을 쉬던 것
오늘 아침엔 별개가 되어 기어이 떨어졌다
너를 나이게 하던
안을 밖이게 하던 핏줄 같았던 매듭이 빛바랜 훈장처럼
오늘 아침에 떨어졌다


인천의 성냥공장이 있던 수도국산 송림동 마을
예외 없이 매주 수요일이면 재활용 분리수거를 한다
딱히 버릴 것도 아낄 것도 없는 거룩한 城 송림동
헤지고 헐거워진 옷을 버릴 땐, 단추란 단추는 모조리 뜯어서 모았다
서랍 속에는 툰드라의 사슴뿔이며 아프리카의 코끼리뿔이며
알래스카의 백곰의 발톱뿔까지 다 들어 있다
심지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벽화 속의 알 수 없는 동물의 사체 뼈까지 다 들어 있다
뼈와 근육은 별도이지 않다


근육은 오늘을 살고
뼈는 한 생애를 더 사는갑다



*시집, 고의적 구경, 천년의시작








멍 - 고철
-故 김금철 군에게



지그시 눈감고 어느 한해를 허벌나게 허벌나게 물들어 본 적 있는지
그 멍,
야금야금 타작해 본 적 있는지
돌 속의 눈깔처럼 정처 다 내려놓고 뻔한 저를 바라본 적 있는지
그런 너를 가벼이 안아본 적 있는지


화딱지가 날만큼 내가 싫었다
맘에 안들었다
예수처럼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런 봄의 날에는, 다시는 그 이름 부르고 싶지 않았다
꽃 나르는 벌처럼
벌 부르는 꽃처럼
외자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짱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






# 고철 시인의 본명은 김금철이다. 성은 고씨로 가운데 글자를 빼고 필명으로 삼았다. 짱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 단단한 이름이 되었다. 한 글자여서 외롭기는 하지만 중심을 잡고 살기엔 더 편했다. 나는 그의 이름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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