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윤중목

마루안 2018. 1. 2. 19:55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윤중목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때 묻은 허물 한 겹 벗어
한 살 한 살 또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차마도 이루지 못한 꿈이기에
초조하게 긴 밤 뒤척이며
뼈마디 삭히는 것이 아니요
세월이 무지러진 가슴을 쓸어
잔잔하게 돌아섬을 배우는 것이라고
험한 세상 끌어안은 속내 깊은 산처럼
묵묵하게 돌아섬을 배우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그 돌아서는 뒷모습에
한 뼘 더 길어진
너그러운 그림자 드리우는 것이라고



*시집, 밥격, 천년의시작








반 평 - 윤중목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자리에 눕는다.
낯익은 몸내가 뒹구는 요 위에
사지를 쭉 늘어뜨리고
오늘밤의 모든 휴식과 안락을 맡긴다.


길어야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
고작 반 평 남짓 넓이건마는
동으로 서로 수십 킬로미터를
온종일 쉼 없이 돌아쳐 지켜낸
와불 같은 평온이다, 고요다.


남은 생의 나날들도 이렇게
밤이면 반 평짜리 둥지로 깃들다가
훗날 죽어 영면하여 누울 곳도
사방 또 반 평이면 족하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 한 몸 무욕한 육신에겐
반 평 바닥이 넓디넓은 도량이다.






# 윤중목 시인은 제2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헬싱키 경제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 IBM 노동조합 제4대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영화평론가로 문화그룹 목선재 대표로 있다. <밥격>이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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