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별 장면 - 김민정

마루안 2017. 12. 26. 21:43



이별 장면 - 김민정



우리는 남자와 여자여서 함께 잠을 잤다
방은 하나
침대는 둘
양말은 셋
(여자는 손수건 대신 양말 한 짝으로 코를 풀었다지 아마)


잠은 홀수여서 한갓졌다
발이 시리니 잠이 안 왔다
깨어 있으려니 더 추웠다


호텔 체크아웃을 누가 할 것인가
숙박 요금이 3일 치나 쌓였으니
이쯤 되면 폭발적인 곁눈질이다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냄새란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 - 김민정



장미만 파는 꽃집 옆 분식 포장마차에서

잘게 썬 돼지 살점을 이쑤시개에 꽂아

자요, 먹어요, 식어요,

맛보라던 아줌마의 앞치마가

노랗게 쩌들어 있었다

노랑이 쩌들면 누런 더러움인데

쪄들어 깨끗해지는 건 노란 옥수수라

솥에서 펄펄 익고 있는데

간만 먹는 내가

소금은 털고

남의 간이나 씹는 내 앞에서

아줌마가 레모나 빈 껍데기로 이를 쑤시었다

이가 썩었나 이 사이에 뭐가 꼈나

잇새를 파는데 끼룩끼룩 소리가 났다

종이컵으로 입 한 번 헹구더니

아줌마가 레모나 빈 껍데기로 다시금 이를 쑤시었다

레모나 빈 껍데기 그 끄트머리에

뾰족한 압침처럼 박혀 있을 냄새여

혹여 짐작이나 하시려나

당신이 이 쑤시던 이쑤시개를

내 코에 갖다 대지만 않았어도

자요, 식어요, 나요,

당신과 자주는 일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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