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모래시계 - 김추인

마루안 2017. 12. 25. 18:52



모래시계 - 김추인



한 생이 다른 생을 밀고 가는 세상이 있습니다


추락하면서 날아오르면서 거기 착지할 바닥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밀리어 끝까지 가 보다 어느 지점에선가는 뛰어내려야 하는 모래의 시간이 있습니다


거꾸로 뒤집히면서 비로소
다시 뛰어내릴 수 있는 힘이 축적된다는 거
앞서거니 뒤서거니 뒤의 생이 앞의 생을
밀어 주기도 받쳐 주기도 한다는 거


한 알 한 알 그 지점에 닿기까지 닿아서 낙마하기까지 바닥에 손 짚고서야 가슴 저리게 오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눈부신 나중이 있다고 믿는 일
착각의 힘이여 신기루여
그대들 없이 무슨 힘으로 날이면 남마다 물구나무설 수 있으리


하루 스물네 번씩이나 몇십 몇백 번씩이나 뒤집히면서 깨지면서 찰나 또 찰나를 제 생의 푸른 무늬 짜 나가는 것은
죽어서도 그리울 개똥밭에서
쳇바퀴 돌며 뒤집히고 넘어지는 우리 모래의 시간에도 기다릴 것이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한 번 손잡은 일 없이도
함께 세상 끝까지 가 보다 뛰어내리는 모래의 시간이 있습니다



*시집, 프렌치키스의 암호, 시와시학








모래시계 2 - 김추인



아직 가보지 못한 밀어내지 못한 시간이 있다


모래의 시간 줄줄 흘러나가는 여기는
나의 지옥이며
여러분의 지옥이며
뒷길에서 뒷길로 이어지던 세상의 골목
돌아보고 싶지 않을 문밖이겠는데
뵈지 않은 거기가 저기쯤이라고
몹쓸 희망의 끈 놓지 못한다
아직 닿아보지 못한 떨어져 내리지 못한
푸른 착지점
저길까 저길까 레일은 달리고 있다


이제 모래의 저울 축은 지나간 풍경 쪽으로
한참 더 기울고
여기는 모래알들의 쓸쓸한 난간이다
열차의 환승역은 어디쯤일까
생의 터닝포인트, 모래시계는 짚어낼 수 있을까



*시집, 행성의 아이들, 서정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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