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월동 준비 - 최영미

마루안 2017. 12. 21. 22:55



월동 준비 - 최영미



그림자를 만들지 못하는 도시의 불빛.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인간이 지겨우면서 그리운 밤.


애인을 잡지 못한 늙은 여자들이
미장원에 앉아 머리를 태운다
지독한 약품 냄새를 맡으며
점화되지 못한 욕망.


올해도 그냥 지나가는구나
내 머리에 손댄 남자는 없었어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머리를 매만지며
안개처럼 번지는 수다.
겨울을 견딜 스타일을 완성하고
거울을 본다


머리를 자르는 것도
하나의 혁명이던 때가 있었다.
빳빳한 생머리가 적과 동지를 구분하던
단순한 시대가.....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 실천문학사








최영미 - 연인



나의 고독이
너의 고독과 만나


나의 슬픔이
너의 오래된 쓸쓸함과 눈이 맞아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가 손을 잡고


나의 저녁이 너의 저녁과 합해져
너의 욕망이 나의 밤을 뒤흔들고


뜨거움이 차가움을 밀어내고
나란히 누운, 우리는


같이 있으면 잠을 못 자.
곁에 없으면 잠이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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