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강인한

마루안 2017. 12. 20. 21:51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강인한



무서웠다. 소년은 변소에 혼자 가는 밤보다 
이를 뽑는 일이.
실에 묶인 잠자리처럼
흔들리는 이에 기다란 실을 묶고 소년은 한없이 달아났다.


어디로 달려갔는지 
알 수 없다. 소년의 추억은 문득
거기서 벼랑에 선다.


눈 딱 감고 뛰어내린 허공 
얼굴에 닿는 바람,
호숩고 호수운 무중력의 공중이었다.


내 이는 모두 서른 개
두 개가 모자라는 억울함을 어디에 항의해야 하는가.
보철을 해준 치과의사는 대답을 주지 않고
오래전 간이 나빠 죽어버렸다.



*시집, 튤립이 보내온 것들, 시와시학








홍어회를 못 먹는 것은 - 강인한



그게 없으면 잔치가 아니라 했다.
초상 난 자리거나 혼인 잔치의 큰상이 아닐 터,
홍어가 빠지면.....


곰삭은 홍어찜을 먹을 때 주의하라,
콧잔등을 후려치고 머리끝까지 단숨에 휘몰아치는 감각의 오로라
를 기꺼이 눈물 속에 찬양할지니.
그러나 홍어회를
나는 먹지 못한다.
부실한 구강구조보다 부덕한 내 탓이다.


자전거를 배우다 배우다 결국
이번 생에서는 자전거를 못 배우고 만 것처럼
매운 홍어찜은 먹어도 홍어회를 못 먹는
그건 운명이다.


알약도 아작아작 깨물어야 먹고, 캡슐도 까서
모래알 같은 약 알갱이를 가루로 빻아야 삼킬 수 있는 사람의
슬픈 운명처럼.


홍어가 빠지면 잔치가 아니라는데
잔칫집 홍어회 앞에서 나는 슬프다,
무효다.





# 예전에 나도 그랬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뭣 모르고 덥썩 홍어회를 먹었다가 콧속에서 울컥 하더니 눈물이 핑 돈다. 어떻게든 먹어보려 했다가 결국 냅킨에 뱉었다. 옆 친구는 재밌어 죽겠다 배꼽을 잡고 나는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못 먹는 음식이 있다는 것이 억울해서였을까. 아직도 홍어회는 포기다. 음식을 딱히 가리지 않는 식성 좋은 먹보도 입에 넣지 않는 것이 있다. 개고기는 안 먹고, 홍어회는 못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