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승의 가장자리 - 장호

마루안 2017. 12. 20. 21:28



이승의 가장자리 - 장호



눈치만 늘어 어른들 흉내밖에 낼 줄 모르는

아이들만 보다가,


가지 말라고 금을 그어놓은 둘레로만 기울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중학생 때 교복위반을 해본 이는 알 거다.


허공에다 걸쳐놓은 사다리를 내려와

숨통이 트이는 가장자리에서

흔들거리며 건들거리며

옆구리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가비야움.


사람들은 왜 가장자리를 겁내는 것일까

그럴싸한 보통사람들 시루 속에서

가슴에 꽃을 꽂은 예식장의 주례가

나는 질색이다.


풀들도 누워 기는 거친 산야

이승의 끝장 같은 가장자리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누가 받쳐주지 않은데도

대지에 뿌리 박은 바위벼랑은

흔들리지 않는다.


목에 힘주어 대어드는 것도 아닌

이단의 고립을 깨무는 것도 아닌,


이승도 저승도 아닌 산에는

구름이 인다.



*장호 시집, 신발이 있는 풍경, 답게








발은 못 속인다 - 장호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 본 이는 안다,

내 발이 남의 발이 아닌 것을.


멀리 갈 것도 없다,

구둣방을 나서서 한 모퉁이만 돌아가 봐도

그 신발의 주인이 내가 아니란 것을 안다.


겉보기는 멀쩡해서 눈은 속여도

발은 못 속인다.


한때, 발에 신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신발에 발을 맞추라는 어거지도

있기는 했다.


섬나라 까마귀 군대가 망한 것도

발을 천대했던 그 까닭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그 입하고도 다르다.

먹어버릇 하면 맞지 않는 음식도

넘어가는 법이다.


뵈기 싫다, 어떻다 하지만

그 눈하고도 다르다.

세상이 일색이면, 언제 그랬더냐는 듯이

이내 반색이 된다.


그 주제에 고집은.... 하고

나무랄 것도 아니다.

그 발이 누가 만든 발인데.